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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 - 현대 과학이 외면한 인간 본성과 도덕의 기원
로저 스크루턴 지음, 노정태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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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성차의 거리감, 남녀 사이의 이해불가, 소통불능을 과장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 말은 과학과 철학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화성에서 온 과학자, 금성에서 온 철학자'처럼 말이다.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는 과학과 철학의 관점차, 입장의 간극은 크다. 일테면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매개물'이라고 했고,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이처럼 과학자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과 생물성(가령 유전자, 호르몬, 세포 등)을 강조하지만, 철학자는 인간의 사회성과 관계성(가령 인격성, 윤리와 도덕 등)을 강조한다.
영국의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은 과학이 놓친 인간의 본질이 바로 '인격성'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은 개인마다 고유의 본질인 인격체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인간은 스스로와 타인을 인식하는 인격체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기 자신을 알고 또 다른 인격체인 타인을 마주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의무와 권리, 책임감을 부과받는 정신적 존재다.
"근대 철학은 인격성이 핵심적 도덕 범주라는 것, 혹은 적어도 도덕적 주체나 자격을 논하기 위한 관문 역할을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많은 철학자들도 인격성이 상호적 관념임을 이해하고 있지요. …우리는 상호인격적 관계의 그물망에 참여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인격적 존재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사람의 인격체가 되려면 그러한 관계를 가능케하는 역량을 지녀야만 합니다. 자기 인식, 책임, 실천이성 등이 그에 포함되겠죠."(189쪽)
물론 철학이 놓친 인간의 본질도 없진 않다. 특히 관계론과 공동체주의를 강조하는 동양철학에 비해 존재론과 개인주의를 유난히 강조하는 서양철학이 놓친 인간의 본질이 적지 않다. 비근한 예로, '인간(人間)'이라는 동양의 한자어는 이미 인간 본성과 도덕의 기원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현대 윤리 철학의 공리주의적 입장은 인간의 도덕적 판단과 자유로운 선택을 '계산'의 문제로 축소하는 잘못을 범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