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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와 천조의 중국사 - 하늘 아래 세상, 하늘이 내린 왕조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단죠 히로시 지음, 권용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8월
평점 :
중화 제국의 DNA는 여전하다. 명 제국 시대의 정치와 제도를 연구한 일본 학자 단조 히로시는 전통적 중화 제국의 행동 원리가 '천하'와 '천조'이며, 이런 행동 원리는 현재의 중국 정부의 대외 정책과 국제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령 '동북공정'이나 '문화전쟁' 같은 중국 중심의 대외팽창정책 배후에 작동하고 있는 암묵적 논리가 천하와 천조이며, 여기에 화이관, 중화사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천조란 천명을 받아 천하를 통치하는 천자의 조정을 말한다. 그리고 천자란 하늘의 자식이라는 의미로, 황제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천자는 하늘의 덕을 받아서 천하를 정치하는 군주이며, 역대 왕조들은 그 덕을 증명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저자는 춘추 전국시대부터 현대 중국에 이르는 중국사를 '천하'와 '천조'의 원리로 재조명하면서, 중화 제국의 행동은 천조의 논리에 따르기만 한다면 모두 정당화되었으며, 역대 왕조들은 그 논리를 현실 정치에 적용하고자 힘썼다고 주장한다.
천하는 천자가 통치하는 공간을 말한다. 천하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좁은 의미에서는 중국 왕조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영역을, 넓은 의미에서는 중국 왕조와 주변의 여러 국가와 민족을 모두 포함하는 범위를 말한다. 천조가 다스리는 천하의 영역은 천자가 덕을 갖춘 정도에 부응하여 저절로 변화하기 때문에 중화 제국의 영역이 확장된다면 그것은 천자의 덕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졌다. 바로 여기서 '화이관', 즉 중화와 이적(오랑캐)의 구별이 등장한다. '화'란 중화 제국의 문화와 제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화이의 차이는 크게 민족의 차이, 지역의 차이, 문화의 차이인데, 제국의 격이 클수록 민족의 차이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고 예의의 문화 차이에 방점을 찍었다. 이러한 화이의 구별은 중화 왕조의 대외 정책을 일관하는 구조다.
중국의 천하관 혹은 천하 시스템은 이웃인 조선, 일본, 베트남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세 국가 모두 대천하 속에서 소천하를 구축했고, 대천하와의 균형을 계산하면서 국가의 체재를 정비해나갔다.
"조선은 자국의 천하를 숨기고 대천하에 가깝게 붙어있는 소중화에서 아이덴티티를 찾았다. 이에 반해 일본은 이중 잣대를 포기하고 결국에는 쇄국을 단행했고,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일본을 중화로 여기는 완결된 소천하를 구축했다. 한편 베트남은 끝까지 이중 잣대를 견지하면서 소천하와 대천하를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에 국가 존립의 토대를 두었다. 대천하에서는 이로서 공손한 태도로 중국에 접근했고, 소천하에서는 주변 여러 국가들에 중화로서 군림했던 것이다."(3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