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츠나구 1 - 산 자와 죽은 자 단 한 번의 해후 사자 츠나구 1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오정화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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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죽는 연습이 바로 철학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지인의 죽음은 깊은 상실감 때문에 내면의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충분한 애도가 따른다면 오히려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되기도 한다. 일본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의 《사자 츠나구》는 산 자와 죽은 자 단 한 번의 해후를 약속하는 소년, 사자(使者) 츠나구를 매개로 삼아, 다섯 명의 사연을 그린 연작소설이다. '츠나구'는 매개, 즉 '연결하다', '잇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현실세계와 이세계를 오가는 그리스 신화의 전령 헤르메스와 다르지 않다. 저자는 이 소설로 2011년 일본 고단샤 출판사의 제32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츠나구는 무당이나 영매가 아니라 망자와의 직접적인 대면 기회를 제공하는 '만남 중개인'이다. 만남의 규칙은 간단하다. 망자와는 딱 하룻밤만 만날 수 있다. 보통 보름달이 뜨는 밤, 오후 7시 정도부터 새벽까지 만남이 이루어진다. 망자가 만날 수 있는 살아있는 사람도 단 한 명뿐이기에, 의뢰인의 요구가 있더라도 망자가 그 만남을 거절할 수 있다.

"오소레잔산의 무녀 이타코와 같은 방식은 아닙니다. 영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으로 빙의하거나, 그들이 보내는 메시지를 받아 당신에게 전하는 형식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이 만나고 싶어 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과 직접적인 만남을 주선해 드리는 만남 중개인입니다."(13쪽)

"세상을 떠난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존재한다니, 정말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딱 한 번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날까. 책은 유일하게 위안을 주던 아이돌을 찾는 직장인 여성의 사연,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는 아들의 사연,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죽은 친구를 찾는 여고생의 사연, 실종된 약혼자를 찾는 남자의 사연을 들려준다. 그러고 보니 만나고 싶은, 내가 무척이나 좋아한 유명 연예인이 있다. 바로 그룹 자드의 사카이 이즈미다.

"인간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아니면 느끼지도, 슬퍼하지도 않아. 모두에게 사랑받았다는 말은 듣기에는 좋아도 딱 그것뿐이야. 오락으로서의 슬픔은 모두 가식이니까. 마지막에 모두에게 그런 감정을 제공할 수 있었다니 명예롭다고는 생각하지만. 비꼬는 말이 아니라 정말 기뻐. 하지만 모두에게 금방 잊힌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어. 겸손이 아니라 그게 바로 사실이고 진리야. 연예계에 있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진리."(60, 61쪽)

자드도 내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사카이 이즈미의 신조는 "인생을 긍정적으로."라고 말이다. 세상엔 악인보다 선인이 훨씬 많고, 작은 호의에 감동하고 행복해하는 이들이 여전히 다수다. 뉴스를 보면 '세상이 미쳤구나' 싶다가도, 자드의 음악을 들으면 세상이 그래도 한결 아름답게 보인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나와 같은 감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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