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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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작가의 자서전을 읽는 것은 일거양득이다. 작가의 삶과 문학을 이해할 수 있고 글쓰기의 구체적인 노하우까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강추하는 작가의 자서전은 세 권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그리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 책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열린책들, 2023)이다. 세 권 모두 자서전이면서 글쓰기 작법서다. 작가는 미리 이야기의 플롯을 마련하는 '플롯 작가'와 엉덩이를 붙이고 개미처럼 꾸준히 쓰는 '즉흥 작가' 두 유형으로 나뉘는데, 스티븐 킹과 베르베르 모두 즉흥 작가 스타일이다. 참고로 '베르베르 씨'는 집 근처 단골 카페에서 아침 8시부터 12시 30분까지 작업 중인 소설을 쓰는데, 분량은 '무조건 하루 열 장'이란다.

"소설 한 편을 완성하는데 대략 9개월이 걸리는데, 버전을 최소 열 개 이상은 써야 집필이 마무리된다. 물론 이전 버전을 다시 읽지 않은 상태에서 새 버전을 쓰는 게 철칙이다."(302쪽)

삶은 타로를 닮았다. “인생은 뽑아 펼쳐 놓은 타로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각각의 아르카나가 우리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거치는 단계, 즉 만남, 위기, 시련, 발견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 멋진 말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주인공 에드몽 웰스의 말이다. 잘 알다시피, 타로 카드는 메이저 아르카나 22장과 마이너 아르카나 56장으로, 총 78장이다.

이 책은 '바보'부터 '세계'까지 메이저 아르카나 22장을 이용해 작가 자신의 자전적 서사를 구성한다. 바보, 매달린 남자, 교황, 마술사, 힘, 은둔자, 연인 등 각 카드는 각 편의 핵심 상징을 나타낸다. 가령 0번 바보 카드는 모든 성장 서사의 시작과 마무리를 상징하고, 5번 교황 카드는 스승이나 멘토와의 만남을 상징한다. 저자는 실제로 글쓰기 강좌에서 타로를 이용해 성장소설의 서사를 짜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한다. 22장의 메이저 아르카나는 데뷔 30주년을 맞은 저자 자신의 삶과 문학을 반추하고 반영하는 서사의 뼈대가 된다.

저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멘토들과 친구들이 있다. 여름 캠프에서 만난 친구 자크 파도바니는 라자 요가 영재인데, "욕망이 없다면 고통도 없다"는 가르침을 주고, 친구의 마스터급 지도 덕분에 난생처음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된다. 과학 전문 기자 출신인 작가는 툭하면 종교인도 아니고 신비주의자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영매 친구 모니크 파랑 바탕과 퇴행 최면 치료사 필리프 르루 덕분에 사후 세계, 유도몽과 전생 같은 특이한 신비체험이 따라붙는다.

고등학생 때 마냥개미 떼에 대한 탐사 보도를 쓰기 위해 만났던 코트디부아르의 프랑스 과학자 르루 교수는 "판단하지 말고 그냥 이해하려고 애쓰게…"라는 현상학적 연구 태도를 전수한다. 잡지 편집장 렌 실베르는 작가의 '라이프 코치'와 다를 바 없는 절친인데, "다른 사람이 네 행복을 좌지우지하는 순간 너는 불행해져"라는 삶의 철칙을 알려준다. 또한 인공지능을 전공하는 대학생 프랑시스 프리드만 덕분에 필립 K. 딕의 열혈 추종자가 되는데, 저자의 초창기에 영향을 준 글쓰기 스승은 '지성의 힘'을 보여준 아이작 아시모프, '영성의 힘'을 보여준 프랭크 허버트, '광기의 힘'을 보여준 필립 K. 딕이다.

"딕은 독자의 마음에 들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독자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기 위해 써야 한다는 확신을 품게 해준 작가다."(128쪽)

작가의 아버지와 반려자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베르베르의 아버지는 그에게 이야기에 대한 열정과 강직 척추염을 물려주었다. 저자는 이야기에 대한 열정과 전업 글쓰기가 결국 강직 척추염을 극복하는 치유력을 발휘했다고 고백한다. 일반적으로 작가의 연인과 반려자는 예술적 영감의 뮤즈거나 소울 메이트 관계다. 베르베르 씨에겐 카트린, 작가 베로니크 라무뢰, 아동 심리학자 이자벨, 그리고 아멜리 등이 그러했다. 이들의 회고록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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