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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너머 : 친구일까 적일까 ㅣ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앙투안 기요페 지음, 라미파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3년 7월
평점 :
한국의 가상적국은 어디일까. 내가 군대에 복무할 때 가상 적국 1호는 북한이었다. 김일성 사망 때 5분 대기조로 일주일 넘게 고생했던 때가 떠오른다. 밤에 경계초소에 서면 행여 적의 도발을 놓칠까 잔뜩 긴장하곤 했다. 가상적은 내부에도 있었다. 서울에 데모나 시위가 있으면 비상태세에 들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실제 출동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정신무장 차원에서 곧잘 압박이 있었다.
국방을 책임지는 국경 수비대원이라면 규율과 피아 구분이 엄격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간혹 국경을 초월한 우정과 사랑이 싹트는 경우도 없지 않다. 여기에는 분명한 환대의 표시와 우정의 제스처가 요구된다. 서쪽 나라의 국경 수비대원 요르그와 동쪽 나라의 국경 수비대원 셀마의 경우가 그러했다.
요르그는 날마다 국경 주변을 순찰한다. 그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아침에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서 해안선을 순찰하고, 경계 초소에서 국경 너머를 감시하다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 날, 국경 너머 동쪽 나라에서 희미한 불빛이 움직였다. 눈보라 때문에 불빛의 정체를 파악하진 못했다. 그런데 다음 날 경계 초소에 못보던 바구니가 놓여 있는게 아닌가. 바구니 안에는 큼직한 연어 세 마리가 들어 있었다. 누가 이런 선물을 보냈을지 궁금했지만 연어가 너무 맛있게 보여 먹어치우고 말았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다고, 요르그도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려면 규율을 어기고 국경을 넘어야 한다. 요르그는 결국 국경을 넘고, 편지와 자그마한 보답을 남겨둔다. 국경 너머 서로 '총칼'을 겨누는 대신에 '장미'를 교환한 셈이랄까. 적의와 의심 대신에 우정과 신뢰의 제스처를 먼저 보낸 이는 동쪽나라 국경 수비대원인 셀마였다. 눈치가 빠른 셀마는 다소 둔한 편인 요르그보다도 먼저 서쪽 나라 국경 수비대원의 삶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둘의 우정 혹은 사랑이 각자의 임무와 책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독자로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