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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완벽한 방법
앤서니 맥가윈 지음, 최이현 옮김 / 니케북스 / 2023년 5월
평점 :
방대한 철학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논하는 윤리학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적 지식의 조건과 맥락을 다루는 과학철학이다. 역으로 말한다면, 윤리학이 행복에 대한 망상과 사기극을 밝히는 나침반이라면, 과학철학은 과학 기술과 의학에 대한 사기극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저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서양철학사를 다룬 새로운 철학 입문서를 접하면 꼭 윤리학과 과학철학에 대한 내용을 먼저 살피곤 한다. 저자의 수준을 이 두 분야에 대한 담론의 질에 따라 평가하는 셈이다.
영국의 철학자 앤서니 맥가윈이 쓴 서양 철학 입문서 『개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완벽한 방법』(니케북스, 2023)을 읽었다. 저자가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는 임마누엘 칸트이지만, 책의 전개 형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 스타일을 택했다. 쉽게 말해서, 저자는 반려견 몬티(몰티즈 테리어)와 함께 런던의 거리와 공원, 묘지 등을 산책하면서 철학의 주요 주제들을 가이드 삼아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적 전통에 따라 철학의 핵심 문제들을 토론한다. 여기서 철학의 핵심 문제들이란 '옳은 행동이란 무엇인가, 자유 의지는 존재하는가, 실재의 궁극적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식을 어떻게 얻는가, 신은 있는가' 등이다. 철학의 주요 주제들이란 윤리학과 도덕철학, 자유의지, 논리, 형이상학, 인식론, 과학철학, 삶의 의미 등이다.
몬티와 본격적으로 철학적 산책을 나가기 앞서서, 저자는 일종의 몸풀기로 '철학사에 등장한 개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영국인의 썰렁한 농담이 어떤 식인지 잘 보여준 잡담의 예랄까. 그리고 책 말미에 '더 읽을거리'를 추천하고 있다. 가령 과학철학의 경우, 앨런 차머스의 『현대의 과학철학』, 포퍼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파울 파이어아벤트의 『방법에 반대한다』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포퍼와 쿤을 매우 좋아하는데, 저자 역시 과학철학의 양대 영웅으로 포퍼와 쿤을 언급한다. 칼 포퍼의 반증가능성과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은 과학철학의 핵이 아닐 수 없다. 이 두 사람의 절충노선으로 헝가리 철학자 임레 라카토스의 '연구 프로그램'까지 소개한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는데, 몬티는 주인 덕분에 가장 철학적인 개가 된다. 몬티는 주인과 과학철학에 대한 토론 후에 이런 날카로운 반론을 남긴다.
"흠…… 지금까지 내가 제대로 들었다면, 귀납법은 엉터리고, 반증 가능성 원리는 반증됐으며, 쿤의 패러다임에는 전환이 일어났고, 라카토스의 연구 프로그램은 퇴행했다는 얘기잖아.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420, 4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