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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고독 - 황야에서 보낸 침묵의 날들
에드워드 애비 지음, 황의방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23년 6월
평점 :
환경을 둘러싼 '날 것'(보존)과 '익힌 것'(개발)의 대립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국립공원과 공유림을 둘러싸고, 개발주의자와 보존주의자의 대립은 팽팽하다. 험준한 오지와 황야, 밀림에 포장도로와 주차장, 저수지와 선착장을 놓으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철저히 야생의 가치를 사랑하는 급진적인 환경운동가들도 있다. 일부 급진적인 환경운동가들은 등산족과 트레일러너, 야영족, 서핑족, 오지탐험가들을 오히려 자연생태를 파괴하는 부류로 간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래도 개발주의자의 입김이 드셀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적 관광과 휴양은 엄청 큰 사업이기 때문이다.
"산업적 관광은 거대한 업종이다. 큰돈이 왔다갔다 하는 사업인 것이다. 이 사업에는 모텔 및 식당업자, 휘발유 소매업자, 석유회사, 도로 건설 계약자, 중장비 제조업체, 주 및 연방의 토목부서 그리고 막강한 자동차 산업이 관여하고 있다. 이 다양한 이익단체들은 잘 조직되어 있고, 웬만한 국가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며 의회에 대한 입김도 강하다. 관광산업은 의회를 통해서 보잘 것 없는 행정부의 한 부서인 공원관리청이 감당하기 힘든 압력을 행사한다. 이 압력은 지방정부, 주, 지역단체 등 모든 방면으로부터 가해지며 광고와 낭비를 좋아하는 국민들의 굳어진 습관이 그 압력을 뒷받침한다."(107, 108쪽)
미국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레인저로 일했던 작가 에드워드 애비는 급진적인 자연 보존주의자다. 작가의 레인저 경험에 기반한 에세이 『사막의 고독』(라이팅하우스, 2023)은 미국 생태 문학의 고전으로, 사막의 자연과 인간의 고독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유려한 문체에 담고 있다. 이 책으로 저자는 '미국 서부의 소로'로 불린다. 아치스 공원은 지표의 4분의 3이 모래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막지대다. 오랜 풍화와 침식이 빚어놓은 기기묘묘한 바위들과 협곡들이 있고, 향나무와 절벽장미를 비롯해 저자가 '정원'이라 칭하는 다양한 야생의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저자는 황무지 사막이 가진 야생의 매력을 때론 시인/철학자의 시적인 문체로, 때론 만물박사의 지적인 문체로 전달한다. 저자에게 사막은 멋진 고독의 장소이자 마음의 안식처다. 저자는 황야가 인간의 영혼에 꼭 필요한 필수품이라고 강조한다. 정말 생각하고 집중하기 위한 장소로 사막이 딱이다. 특히 도시의 번잡과 소음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말이다. 사막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그 단순무식한 배경 때문에, 오히려 생명의 신비와 경이를 증폭시키는 생태학적 상상력의 성지가 된다.
"생명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은 이곳 사막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식물과 동물의 밀도가 낮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다른 곳처럼 생명체들이 붐비지 않고 띄엄띄엄 흩어져 있기 때문에 각각의 풀이나 관목, 나무 그리고 풀잎 하나하나까지도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살아있는 유기체들은 생명이 없는 모래와 황량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대담하고, 용감하고, 생기있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68쪽)
나는 생태주의와 환경운동을 지지한다. 하지만, 야생은 말그대로 사람의 입김이 전혀 닿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아니다. 뭐랄까, 오늘날 대다수 캠핑족처럼 깔끔한 화장실과 온수가 나오는 숙박시설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야생과 오지여도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관광과 레저에 길들여진 탓이랄까. 어린왕자는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야."라고 했다. 그런데 그 우물이 이왕이면 최근까지 사람이 잘 관리하고 있는 신식 우물이었으면 싶은 게 내 속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