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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용이 울 때 ㅣ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2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평점 :
한국인은 한(恨)의 민족, 정(情)의 민족이다. 한과 정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말인데, 외국인에게 설명하기가 곤란할 때가 있다. 한풀이와 미운 정을 외국 친구들에게 설명해보라. 한이란 한국인의 슬픔, 눈물, 울분, 분통, 저항을 함축한 정서어다. 그리고 정은 한국인의 다정함, 친절, 은근한 배려, 호의, 사랑, 애잔 등을 함축한 말이다. 정과 한 모두 한국인이 각박한 세월과 격동의 시대를 견뎌내게끔 한 정서적 원동력이다. 그런데 외국인은 이런 정한의 개념을 어려워한다. 그럴 땐 정한을 담은 대표적인 노래들을 들어보라고 하자. 가령 〈아리랑〉, 〈봉선화〉(김형준 작사 · 홍난파 작곡), 〈정한의 밤차〉(박영호 작사 · 이기영 작곡) 등이 그러하다.
디아스포라의 정과 한을 풀이한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다. 정선, 밀양, 진도의 아리랑을 꼽아 3대 아리랑이라고 한다. 아리랑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다. 고대 신화나 아랑 낭자설의 전설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고, 고려 시대 이래로 귀화해 살며 가무를 즐겼던 거란족과 여진족이 고향을 그리는 향수의 노래라는 설도 있다. 능소 이어령 선생은 아리랑을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망향가'로 간파한다. 한국 가곡의 효시로 알려진 〈봉선화〉는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의 모습을 초라한 초가집 울타리 밑 봉선화의 이미지에 투영한 노래다. 그리고 〈정한의 밤차〉는 일제 시대 고향을 떠나 정신대, 강제징용, 징병으로 끌려가던 아픔을 노래했다.
한국인의 고유 정서인 정과 한은 흙과 바람을 머금고 있다. 능소는 한국인 최초의 한국문화론으로 자부하는 명작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서 '지렁이의 울음'을 화두삼아 제시한다. 우리 선조들은 지렁이를 토룡 또는 지룡, 즉 ‘땅속의 용’이라고 불렀다. 왜일까. 능소는 지렁이가 흙 속의 무기물을 유기물로 바꾸어 생명의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땅속의 숨은 영웅'이라고 강조한다. 선인들이 착각한 지렁이의 울음이 실은 땅강아지의 울음이었지만, 그럼에도 지렁이의 울음에서 땅과 흙이 상징하는 생태학적 가치를 강조하고, 그 울음에서 무기적 세계를 유기적 생명으로 바꾸는 희망의 마음, 돌봄의 자세를 적극적으로 읽어낸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란 말이 있다. 이른바 '케이 문화'의 저력은 지렁이의 울음에서 탄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