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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로 산다는 것 - 왕권과 신권의 팽팽한 긴장 속 조선을 이끌어간 신하들의 이야기, 개정판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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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왕권과 신권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했다. 그런 조화와 균형이 깨지면 피바람이 일었다. 가령 태종은 왕권의 신봉자였고, 정도전은 신권의 신봉자였다. 결과는 피바람이었다. 정도전은 "국왕의 직책은 한 재상을 선택하는 데 있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명군 옆에는 충신과 현신이 있었고, 혼군 옆에는 간신과 난신이 있었다. 조선 오백 년 역사에서 성군으로 손꼽히는 군주는 세종대왕인데, 세종에게는 황희, 장영실, 집현전 학사들이 있었다. 한편, 반정으로 물러난 대표적인 폭군이 연산군과 광해군인데, 연산군에게는 국정을 농단한 장녹수와 임사홍이 있었고, 광해군에게는 김개시와 이이첨이 있었다.
눈 밝은 군주는 현명한 참모를 좌우 측근에 두어야 한다. 역사학자 신병주는 킹메이커 정도전과 하륜부터 실학자 김육과 정약용까지 두루 소개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명참모들의 덕목으로, 목표 설정의 적합성, 적절한 정책 추진, 여론과 언론 존중, 도덕성과 청렴성,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 등을 언급한다.
앞서 성군의 대명사 세종대왕을 언급했다. 세종에는 못미치지만 그래도 현군으로 꼽을 수 있는 군주는 성종, 영조, 정조 세 분이다. 성종 시대는 조선의 문물제도 융성기로 평가된다. 훈구파와 사림파의 조화와 균형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성종은 서거정, 김종직, 김일손 등에게 고르게 역할을 맡겨 15세기 제도와 문물 정비를 완성하였다. 서거정은 조선 전기 최고의 문장가다. 오랜기간 대제학을 지냈고, 《경국대전》, 《삼국사절요》, 《동문선》 등 국가에서 편찬한 책들의 서문을 도맡았다. 그리고 문집 《사가집》을 남겼다. 김종직은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조의제문'을 쓴 사림파의 영수이고, 김일손은 그의 제자다.
아쉽게도 저자는 탕평군주 영조의 참모와 현신은 소개하고 있지 않다.
정조대왕은 조선 후기 문예부흥기를 주도한 현군이다. 문예군주 정조는 규장각이나 장용영을 통해 문무의 조화를 이루며, 노비제 혁파 계획을 통해 차별을 해소하고자 했다. 개혁정치를 지향하던 정조를 보좌한 참모는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규장각 문신들이다. 아, 채제공과 이가환을 빼놓은 것이 눈에 밟힌다. 또한 나라면 벽파의 영수 심환지까지 언급했을 것이다. 정조가 오늘날 유교적 계몽군주의 표상이 된 배후에는 정약용 같은 남인 실학자와 박지원 같은 노론 북학파의 공이 크다. 정조 사후 집권 세력이 된 노론 벽파는 남인 탄압의 수단으로 천주교를 적극 활용했다.
"정조 승하 후에는 1801년의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유배 기간 중에는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국가 경영에 관련된 모든 제도와 법규에 대하여 준칙이 될 만한 것을 저술한 《경세유포》, 지방관리인 목민관이 백성을 다스리는 요량과 본받을 만한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목민심서》, 죄인을 처벌할 때 유의해야 할 점과 법을 적용할 때의 마음가짐 등을 제시한 《흠흠신서》 등은 그의 정치, 사회, 경제 사상을 집대성한 책이다."(4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