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산책가
카르스텐 헨 지음, 이나영 옮김 / 그러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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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책은 약이기도 하고 음식이기도 하다. 이럴 땐 이런 음식이 제격이듯, 이럴 땐 이런 책이 제격인 경우도 있다. 이른바 '책약식동원'이다. 타향살이에 지쳐 있을 때 생각나는 고향 음식이 있는 것처럼, 마음이 지쳤을 때 특별히 생각나는 책들이 있다. 그래서 애서가와 간서치는 종종 이런 문답놀이를 하곤 한다. 가령 활기를 불어넣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 베스트 파이브는? 영혼이 불안할 때 읽으면 좋은 책, 베스트 파이브는?

어릴 때 매우 자주 꾼 꿈이 있다. 산타처럼 커다란 자루를 갖고 서점에 들어가 읽고 싶은 책을 맘껏 담아 가지고 나오는 꿈이다. 또한 편지를 전해주는 우편배달부처럼, 보고 싶은 책을 배달해주는 책 배달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란 백일몽도 꾸곤 했다. 그런데 세상의 간서치는 서로 통하는 바가 있는지, 독일 작가 카르스텐 헨은 소설 《책 산책가》(그러나, 2023)에서 바로 그런 책 배달부를 등장시키고 있다. 바로 70대 할아버지인 칼 콜호프다. 칼은 동네 책방 '암 슈탓토어'의 오랜 직원으로, 책을 배달하고 추천해주는 매우 특별한 고객 서비스를 전담하고 있다. 책 배달부 칼만 독특한 게 아니라, 배달 손님들도 꽤나 유별나다.

칼은 배달 손님들에게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을 붙여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을 받을 자격이 있"다면서 말이다. 가령, 부유하고 지적이지만 조금은 오만한 피츠윌리엄 다아시, 대학은 근처에도 못 가봤지만 역사 논문만 읽는 파우스트 박사, 책 속 오타 찾기에 진심인 전직 초등교사 롱스타킹 부인, 퇴거 명령이 내려진 수도원에서 버티고 있는 아마릴리스 수녀, 집에 있는 책의 책등이 모두 빨간색인 헤라클레스, 작가가 되고픈 책 읽어주는 남자, 가정폭력의 피해자 에피가 그런 유별난 손님들이다.

《책 산책가》는 책을 매개로 한 노인과 소녀의 우정을 다룬다. 책 배달부 칼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구원자는 9살 소녀 샤샤다. 조숙한 책벌레인 샤샤는 칼 할아버지를 '책 산책가'라고 부른다. 매일 대성당 광장을 가로지르던 칼을 지켜보다 용기를 내 말을 걸고는 곧장 책 배달의 길에 동행하게 된다. 책 산책가의 영리한 조력자로서, 샤샤는 저마다의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던 손님들에게 정말 약이 되어줄 수 있는 책이 어떤 책인지 직감하게 된다. 배달 손님들은 샤샤의 기발한 도움 덕분에, 각자의 문제를 해소하고 소박한 독서 공동체까지 꾸리게 된다. 한편, 매우 다혈질인 샤샤의 아버지 때문에, 칼은 책방에서도 쫓겨나고 심지어 뇌진탕과 골절로 크게 다치기까지 한다. 삶의 의욕을 상실한 칼은 자기를 유폐하는데, 샤샤와 배달 손님들의 기지 덕분에 재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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