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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를 알면 보이는 것들 - 공간은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짓는가
정은혜 지음 / 보누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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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럼, 지리를 알면 보이게 되는 것들은 무엇일까. 지리학자 정은혜는 지리학적 상상력의 다양한 쓸모를 보여준다. 공간, 지역, 장소의 힘과 상호연관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인간과 공간, 지역, 장소의 복잡미묘한 상호작용을 다양한 학파의 개념과 이론을 토대로 소개하고 있다. 가령 비달의 생활양식, 칼 사우어의 경관론, 세계 시스템 이론, 그리고 동양의 풍수지리학 등이 그러하다. 결국, 지리학적 상상력의 핵심 물음은 다음 한마디로 집약된다. '인간은 공간/장소를 어떻게 바꾸고, 공간/장소는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가.'
지리학은 크게 자연지리학과 인문지리학으로 나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인문지리학으로, 인문지리학은 "공간, 조직, 인간, 환경 간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분야로서 인간이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공간의 형태 등을 연구"한다. 인문지리학은 장소에 대한 인간의 경험과 애착, 의존성, 정체성 등을 연구하는데, 여기서 장소의 의미와 가치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장소는 지역 주민들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준다. 둘째, 장소는 주민들의 물질적인 복지, 삶의 기회, 생활양식의 선택 등에 영향을 준다. 셋째, 장소는 문화적 또는 감정적 상징의 공간이 된다. 마지막으로, 공간은 변화와 혁신, 저항과 갈등이 표출하는 공간이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폴 비달 드 라 블라슈에 따르면, "지역적 특성은 결국 그 지역 주민들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지역이 "우리의 삶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실체"라면, "장소는 사람의 공간적 자화상"이다. 비달은 이런 지역과 장소의 특성을 '생활양식'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생활양식은 자아와 타자,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와 관점을 반영하고, "제도, 전통, 태도, 목적, 사람들의 기술 등의 복잡한 구성요소(=문화)를 함축"한다.
현대 지리학의 이론들 가운데 내 관심을 끈 것은 칼 사우어의 '문화경관론'이다. 사우어는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을 구분하는데, 자연경관은 말 그대로 자연 그 자체를 말하고, "문화경관은 가족관계, 체제, 종교, 언어, 교육, 젠더 등의 '문화'가 시간을 거쳐 매개체인 자연과 융합되어 인구, 거주, 도시계획, 생산, 물품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경관을 크게 일상적 경관(가령 골목길), 상징적 경관(가령 서울의 광화문 광장이나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 힘의 경관(가령 김수환 추기경의 서거식 추모 물결), 절망의 경관(가령 난민촌이나 슬럼가), 버려진 경관(폐교나 버려진 집들)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