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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세계가 우주라면 - 세상을 꿰뚫는 아포리즘 50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5월
평점 :
모임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다면 두 가지 이야기를 꺼내면 직방이다. 바로 정치 이야기와 종교 이야기다. 모임의 화목을 생각한다면, 사전에 '정치 이야기의 금기화'나 '종교 이야기의 금기화'를 암묵화해야 한다. 오늘날의 정치와 종교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거세다. 장삼이사의 눈으로 볼 때, 정치와 종교 모두 쇼비즈니스로 전락했다. 마녀사냥과 갈취의 기술이 난무하고, 광고와 홍보로 뒤범벅이다. 이데올로기, 믿음, 신념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고 파벌을 일삼는 부족주의가 판을 친다. 말끝마다 사랑과 화합 타령이지만, 갈등과 대립, 적대와 분열의 행동을 일삼는다. 그리고 희망을 미끼로 삼아서 분노와 증오를 조장한다.
정교분리의 역사가 꽤 되었지만, 본질적으로 정치와 종교는 형제간이다. 정치인과 종교인 모두 신념의 동물이고 부족의 동물이다. 배타적 신념으로 똘똘 뭉친 맹신자들이다. 특히 스스로를 매우 정의롭다고 자부하는 정의감 중독자들이 대다수다. 이들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문제아다. "세계의 악을 감시하고, 독재자들을 무찌르며, 인류를 부유하고 행복하고 자유롭게 만들 임무를 지녔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은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기보다는 자신이 도우려는 사람들에게 온갖 불행을, 그리고 스스로에게는 파멸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높다."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윌리엄 풀브라이트의 말에 경청해보자.
"아무런 의심없이 특정한 신조를 믿으며,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 신조를 실천에 옮긴다. 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며 그 대신 살아 숨쉬는 특정한 신념 또는 이데올로기의 화신이다."(214, 215쪽)
기억하라, "확신과 광신은 이웃사촌이다".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는 말처럼, "앎과 지식의 크기가 작을수록 확신의 강도는 강해지는 법이다." 정치인과 종교인의 극단적인 신념은 폭력을 부추기고 마녀사냥과 같은 증오범죄를 합리화한다. 존 애덤스는 "정당은 정치에서 가장 심각한 악이다"고 했다. 이를 살짝 비틀면, '교회는 신앙 생활에서 가장 심각한 악이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 마키아벨리의 명언이 떠오른다. "정치는 도덕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종교도 그러하다.
물론 정치와 종교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작가 출신으로 체코 대통령을 지낸 바츨라프 하벨은 정치의 순기능을 다음처럼 강조했다. "정치란 도덕적 감성, 자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능력, 진정한 책임감, 취향과 기지,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 절제의 감각, 겸손을 더 많이 강조하려는 인간적 노력이 행해지는 장소다." 내 귀엔 마치 에덴동산에서 노닐던 아담의 잠꼬대처럼 들린다. '정치' 두 글자 대신에 '종교'란 글자를 넣어보라. 그러면 종교의 순기능을 대변하는 밤꿀처럼 감미로운 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