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카페 - 평범한 일상이 철학이 되는 공간
크리스토퍼 필립스 지음, 이경희 옮김 / 와이즈맵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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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탐구의 과제는 다음 두 질문으로 압축된다. '나는 누구인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서구 문명에서 이 두 질문에 가장 명확한 답을 제공한 인물은 바로 소크라테스와 예수 두 사람이다. 나는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영적인 쌍둥이나 분신처럼 생각하곤 한다. 둘 모두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춘 대화와 향연의 방식으로 진리 탐구를 수행했고, 저서를 남기지 않았고, 기존의 종교적 규범이나 사회적 관습에 도전하여 동족에게 고발당하지만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각자 플라톤과 바오로라는 청출어람의 제자를 두었다.

내가 청소년기에 가장 좋아한 철학자는 니체인데, 니체는 아이러니하게도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서구 문명에 노예도덕을 확산시킨 주범으로 강하게 비판하곤 했다. 이런 니체의 사상을 영미권에 널리 소개한 철학자가 바로 독일계 미국인 철학자 월터 카우프만이다. 월터 카우프만은 흥미롭게도 니체를 초기 실존주의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영미 분석철학의 이른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논리기호와 수식이 빼곡한 분석철학 논문과 니체의 텍스트를 비교하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인데 말이다. 월터 카우프만에 따르면, 서구 철학의 전통을 실존주의 철학자와 분석철학자가 각각 두 부분으로 나눠 계승했지만, "실존주의 철학자와 분석 철학자 모두 소크라테스의 반쪽에 해당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철학적 전통의 비조가 바로 소크라테스라는 얘기다.

니체는 수도원과 비슷한 일상적인 철학자 공동체를 만들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 니체가 완성하지 못한 꿈을 교육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크리스토퍼 필립스가 완성하지 않았나 싶다. 필립스는 인종, 학력, 빈부, 나이를 초월해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하고 대화하는 세계 최고의 철학 모임인 '소크라테스 카페'의 창립자다. 1996년부터 미국 전역과 여러 나라에서 소크라테스 카페를 열었고, 현재 한국에서도 운영 중인데, 소크라테스 카페가 열리는 장소는 카페와 식당 외에도, 서점, 유치원, 학교, 도서관, 양로원, 교도소 등 어디든 가능하다.

필립스는 소크라테스 카페가 월터 카우프만의 저서와 사상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술회한다. 같은 맥락에서, 필립스는 "철학의 역사를 플라톤의 철학을 잘못 해석하고 타락시키는 일이 너무나 흔했던 역사라고 말하고 싶다"고 토로한다. 철학적 전통의 핵을 딱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소크라테스의 이 말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 카페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주제와 내용을 토론한다. 이때 대화와 토론의 유일한 방법론은 비판적 질문과 적극적 경청을 중시하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에게 어떤 개념의 정의를 묻고, 그 답변이 모순되거나 부적절하다면 계속 질문을 던져서 상대방이 스스로 오류를 인정하게 한다.

저자는 철학 모임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진행자와 참가자가 따라야 할 열 가지 규칙'을 제시한다. 그중 일부만 소개하면, "진행자와 참가자는 모두 적극적인 경청자가 되어야 한다", "진행자는 참가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견해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근거를 제시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진행자와 참가자는 다른 사람이 제기한 관점에 질문하고 논리적인 모순이 있으면 고찰해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진행자와 한 명의 참가자 사이에서만(또는 한 명의 참가자와 또 한 명의 참가자 사이에서만) 대화가 계속 오가는 토론이 돼서는 안 된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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