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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수업 - 자신에게 몰두하는 일은 왜 인생을 망치는가
로버트 프리츠.웨인 스콧 엔더슨 지음, 박은영 옮김, 알렉스 룽구 감수 / 라이팅하우스 / 2023년 5월
평점 :
현대 문화의 특색으로 병적인 나르시시즘과 지나친 자기도취의 문화를 지적하는 사상가들이 있다. 선구적인 작업이라면 크리스토퍼 라쉬의 『나르시시즘의 문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라쉬는 자기중심적인 에고의 팽배와 셀카와 같은 자기 이미지에 대한 지나친 관심, 높은 자존감에 대한 의미부여를 비롯해 병리학적 나르시시즘이 사회적으로 만연하는 배경과 특징을 탐구했다. 그리고 나르시시즘의 문화가 동기부여와 긍정적 사고, 자존감, 잠재력 계발을 강조하는 자기계발 산업의 돈벌이 사업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시사했다.
라쉬의 바톤을 이어, 로버트 프리츠와 웨인 앤더슨 역시 『정체성 수업』(라이팅하우스, 2023)에서 자기 집착과 나르시시즘을 조장하는 현대의 자의식 과잉 문화가 일으킨 폐해를 파헤친다. 주로 정체성의 부정적인 부메랑 효과를 언급하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자의식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학습은 저해되고 창조적 행위는 방해받는다고 지적한다. 이 책이 강조하는 핵심 논지는 ‘인생을 창조하는 데 있어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매사를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창조하라’이다. 긍정적 사고와 자존감을 마치 종교신앙처럼 전도하는 정체성 과잉 문화는 나르시시즘의 문화와 마찬가지로 개인적ㆍ사회적으로 유해하다.
책은 우선 두 가지 유형의 거시구조적 인생 패턴을 설명한다. 하나는 '진동 패턴'이고, 다른 하나는 '전진 패턴'이다. 진동 패턴은 흔들의자와 같아서 앞으로 움직여도 결국 뒤로 물러나고 만다. 자기계발 업계가 그토록 강조하는 정체성 세계가 바로 성공을 역전시키는 파괴적인 진동 패턴을 초래한다. 진동 패턴의 쉬운 예는 다이어트에 중독된 이들이 겪는 만성적인 요요 현상이다.
반면, 역사상의 위대한 성취자들은 정체성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버리고 인생이라는 예술을 창조하는 세계를 선택하면서 전진 패턴을 구축한다. 이들이 지향하는 삶의 중심점은 자의식이나 정체성이 아니라 살고 싶은 찐인생 목표나 창조하고 싶은 결과물이다. 이들은 창조하고픈 결과물에 대한 파악과 그 목표와 관련해 지금 처해 있는 현실의 차이를 바탕으로 한 구조적 긴장을 적극 활용한다. 저자들은 정체성의 진동 구조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삶의 전진 구조로의 전환을 메타노이아, 즉 종교적인 회개에 비유한다.
우리는 그동안 기존의 교육과 상식으로 쌓아 올린 정체성의 신화에 갇혀 노예처럼 지내왔다. 번창하는 자기계발 산업은 정체성 신화와 나르시시즘 문화와 상호 기생하는 관계다. 내적 잠재력을 개발하고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제공하는 자기계발 산업의 인기는 정체성 문제와 나르시시즘 문화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그 결과이기도 하다. 자기계발 산업이 내세우는 프로그램은 역효과를 낳곤 한다. 가령 자존감 운동이 대표적이다. 자신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려는 욕구를 충족시켜주지만, 동시에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거나 타인의 승인이나 칭찬에 의존하게 만든다. 자존감 운동은 자신의 이익이나 만족만을 추구하기에 허영심과 오만성을 조장하기 쉽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과 책임감에 상대적으로 소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