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책세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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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학폭 가해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학폭 피해자들은 언제나 가해자들에 비해선 소수다. 학폭 가해자는 '일진'이라 불리며 대개 패거리 문화를 이루기 때문에 피해자보다 쪽수가 많다. 일진은 악의 세력을 미화한 꼬리표다. 반면에 피해자는 '나 홀로' 약자이기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그냥 짓밟히고 만다. 반항과 복수는 생각지도 못한채, 피해자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게 되었을까, 특별히 잘못한 일도 없는데 나날이 왜 지옥일까.'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학폭 가해자들은 외려 당당하다. 굳이 해명할 생각도 없지만 막상 한다고 해도 가해자의 해명은 언제나 궁색하다. '고작 이런 이유로'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궁색한 변명이다. '그때는 어렸으니깐, 잠깐의 재미로 한 거야', '이유는 없어…그냥 하고 싶어서 한 거야', 아님 '가해자 편에 서지 않으면 피해 당사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그랬어'. 학폭은 범죄다. 범죄 기록이 평생 남듯, 학폭 가해자의 기록도 어딘가에 평생 남겨져야 하지 않을까.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관대한 세상은 또다른 희한한 지옥이다.

소설가 가와카미 미에코는 감수성이 충만한 10대 중학생 '나'를 등장시켜, 청소년 학교 폭력 문제를 무대에 올린다. 두 명의 학폭 피해자와 한 무리의 학폭 가해자가 등장하는데, 피해자 두 명은 주인공인 사시를 가진 '나'와 꾀죄죄한 교복을 입고 다니는 동급생 고지마다. 사팔뜨기인 '나'는 니노미야 일당들의 '일용할 밥'이고, 고지마는 반 여자애들의 따돌림 단골이다. 학폭 가해자는 일진인 니노미야 패거리와 패거리의 만행을 한 발짝 뒤에서 방관하는 모모세다.

학폭에도 합당한 논리가 성립할까. 작가는 의도적으로 강자의 궤변과 약자의 궤변을 대비시킨다. 독자들은 학폭과 관련된 두 개의 궤변이 나란히 평행선을 질주하는 모습에 진저리칠 수도 있다. 모모세는 "세상의 모든 일은 우연히 벌어지며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는 강자의 궤변을 보인다. 마치 세기말 묵시록의 패자 논리 같다. 모모세는 피해자인 나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당하면 싫은 것은 남한테도 하면 안 됩니다"라는 인간관계의 황금율을 속임수나 뻔한 거짓말로, 약자의 변명으로 간주한다. 터무니없는 개똥철학을 늘어놓는 모모세에게 사이비 교주의 자질이 엿보인다. 주인공까지도 혹하게 만드니 말이다. 반면에 피해자인 고지마는 "모든 약함에는 이유가 있으니 자신의 약함을 유지하며 존재하는 것으로 싸워야 한다"는 약자의 궤변을 내비친다. 고지마의 약자 논리는 아큐적 정신승리법이라기보다는 기독교적인 구원 논리에 가깝다. 고지마는 마치 '성녀 신드롬'의 거룩한 희생자를 자처하는 것 같다. 고지마는 강박처럼 성녀나 성자의 표식을 학폭 피해자의 몸에서 찾곤 하는데, 고지마가 주인공의 사팔뜨기 눈을 좋아한 이유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다.

얻어 터지는 '샌드백'이 존재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고지마는 학교 폭력 피해를 일종의 경건한 신앙이나 믿음 차원으로 합리화한다. 고지마가 '헤븐'이라 새롭게 이름 붙인 미술관의 어느 작품을 보더라도 고지마의 생각은 종교적인 혹은 미신적인 색채가 짙다. 여기서 헤븐은 "슬픔과 고난을 극복한 후에 도달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저 걔네들의 괴롭힘에 굴복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를 선택해서 받아들이고 있는 거라고, 고지마는 몇 번이나 나에게 거듭 말했다. 우리가 아무리 지독한 꼴을 당해도 누구에게도 호소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가고, 그리고 거기서 같은 일이 반복되고, 그럼에도 거기서 그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167쪽)

작가는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폭로하고 폭력의 원인과 논리를 나름 모색도 하지만, 마치 학폭을 한때 잠시 내리는 소낙비처럼 묘사하려는 경향이 있다. 정작 학교폭력 예방에 대한 고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이 사시 교정 수술을 받은 뒤 바라본 세상은 아름답기 그지 없는데, 그런 정상적인 눈이 앞으로 학교폭력에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나 복선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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