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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있었다 - 경제학이 외면한 인류 번영의 중대 변수, 페미니즘
빅토리아 베이트먼 지음, 전혜란 옮김 / 선순환 / 2023년 4월
평점 :
사회과학 분야에서 페미니즘 민감성이 가장 떨어지는 학문이 바로 경제학이다. 경제학은 '마초 학문'의 대명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영국의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빅토리아 베이트먼은 경제학이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라는 기본적인 비판은 물론, 여성의 자유와 신체 자율권이 서구의 부에 끼친 영향력을 논증한다. 또한 경제학의 중심에 페미니즘이 필요하고, 섹스와 젠더를 세계 경제사의 중심에 두어야 성평등과 소득불평등 사이의 관계가 명확해지고, 글로벌한 빈부격차와 경제 현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상 모든 학문이 변했는데 주류 경제학만 제자리다. 경제학 세계에서는 페미니스트 혁명이 일어난 적도 없고 여성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시대착오적이다."(14쪽)
주류 경제학은 삶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갈라 장벽을 세운 후, 시장과 정치 같은 공적 영역의 삶만을 중시하고, 대조적으로 가정, 가족, 공동체, 여성 신체 등과 같은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했다. 저자는 경제학이 '성 요인'을 수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경제학자들이 곧잘 마주하는 문제의식들이 있다. 가령 "서양 국가들은 왜 부유한가? 가난은 왜 그렇게 없애기 어려운가? 자유시장의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인가? 경제는 어떻게 유능하고 민주적인 국가를 형성해내는가? 왜 불평등은 계속 증가하는가?" 등이다. 이런 난제들을 해결하려면 여성의 자유와 신체 자율권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저자의 논지는 명확하고 끈질기다. 성평등은 성장과 분배에 중요한 요소이고, 소득불평등과 성평등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소득불평등을 해소하려면 결국 성평등에서 시작해야 한다.
"결론은 명확하다. 여성의 신체 자율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서양의 불평등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현재는 여성이 피임과 임신중지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20쪽)
주류 경제학은 가부장제의 여성 억압을 외면하고 성 요인을 홀시했다. 저자의 말대로, "경제성장, 경기 호황 및 불황, 불평등에 대한 이론에는 대부분 성과 젠더 요인이 빠져 있다." 주류 경제학의 연구방법론은 젠더 편향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서, 경제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가정과 척도, 방법론이 성차별적이라는 얘기다. 이제까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여성 경제학자는 엘리너 오스트럼 단 한 명뿐이라는 점도 찜찜하다. 저자의 주장대로, 여성이, 여성의 지위와 자유가 인류의 번영과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면, 경제학의 발전에 페미니즘과 성평등이 기여하는 바도 충분히 공감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