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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 있는 세계사를 바꾼 50권의 책 - 역사를 움직인 책 이야기 ㅣ 알아두면 쓸모 있는 시리즈
대니얼 스미스 지음, 임지연 옮김 / CRETA(크레타) / 2023년 4월
평점 :
조선을 대표하는 문호를 딱 한 사람만 꼽자면 단언컨대 연암 박지원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문호는 셰익스피어, 중국을 대표하는 문호는 루쉰,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호는 톨스토이, 일본을 대표하는 문호는 나쓰메 소세키다. 이는 거의 딴지를 걸 수 없는 상식적인 답에 해당한다. 그런데 질문을 바꿔, 만약 세계사를 바꾼 책들을 딱 50권만 꼽는다면 어떨까. 나라나 시대를 대표하는 문호를 꼽는 일보다 훨씬 어려워 보인다. 일단 앞서 언급한 문호들 가운데 누군가의 이름은 지워지고 만다. 가령 연암이 그러하다. 연암은 퇴계나 다산에 비하자면 중일 같은 주변국이나 세계사에 대한 전반적인 영향력은 미비하다. 퇴계학이 일본 유학에 미친 전반적인 영향력과 다산의 《목민심서》가 베트남 공산혁명의 아버지에게 미친 개인적 영향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영국 작가 대니얼 스미스는 '역사를 움직인 책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시기별로 '고대, 중세, 근세, 19세기, 1900년대 이후' 5부로 나누어 총 50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선별한 목록들 가운데 십분 공감이 가는 책들도 있지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그런 책들도 있다. 여기서 '십분 공감이 가는 책들'이란 《도덕경》, 《모세오경》, 《쿠란》 같은 세계종교의 경전이나 《일리아드》, 《신곡》, 《돈키호테》, 《파우스트》, 《전쟁과 평화》 같은 문학사에 길이 빛나는 불멸의 고전, 그리고 거시적으로 볼 때 산업혁명, 과학혁명, 정치혁명, 문화혁명 등에 포괄적 영향을 끼친 저서들을 말한다.
과학혁명을 예로 든다면,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대화-천동설과 지동설, 두 체계에 관하여》, 뉴턴의 《프린키피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정치혁명이나 문화혁명을 예로 든다면, 루소의 《사회계약론》, 토머스 페인의 《상식》, 마르크스의 《자본》,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우리는 왜 기다릴 수 없는가》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책들'은 실은 나의 무지를 일깨운 책들이다. 크게 세 가지 유형이다. 내가 난생 처음 들어본 책, 수많은 대표작 가운데 왜 하필 이 책일까,란 의문을 불러일으킨 책, 그리고 국사책에서나 잠깐 나올법한 책. 당혹스럽게도 내가 처음 들어본 책이 다섯 권이나 된다. 로마 시대에 쓰인 《요리에 대하여》, 중세 시대 무명의 수도사들이 쓴 《켈스의 서》와 은수자의 신비 체험을 기록한 《하느님 사랑의 계시》, 고대 마야 문명의 상형문자로 쓰인 《마드리드 코덱스》, 도망친 노예가 익명으로 발표한 자서전 《린다 브렌트 이야기》가 그러하다. '왜 하필 이 책일까'란 의문을 자아낸 경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 탐구》다. 저자는 이 책을 "고대 최고의 자연사, 동물학, 해양생물학 연구서"로, 그리고 "관찰 가능한 현상을 중시하는 증거 기반의 과학적 접근법을 제시했다"며 높이 평가한다. 끝으로, 교과서에서 딱 한 줄로 정리될 법한 책들이다. 가령 고려 시대에 간행된 백운화상의 《직지심체요절》이 그러하다. 자랑스럽게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소개된다. 그런데, 영국인 저자는 정말 이런 책들까지 다 읽어본 것일까. 의심병이 자꾸 도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