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언제나 인간을 앞선다 - 처음 만나는 생체모방의 세계
패트릭 아리 지음, 김주희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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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은 거칠고 힘들고 어렵다.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야생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물종은 나름의 생존기술을 발달시켰다. 가령 모하비사막에 서식하는 땅거북은 1년 내내 물을 마시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다. 사람은 물없이 72시간을 넘기지 못하는데 말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모든 생물종은 자연선택을 통해 생존, 경쟁, 번식에 유리한 특성을 획득한다. 적자생존 덕분에 자연은 기발한 재주와 깜냥이 넘치는 문제 해결사들로 가득하다. 저널리스트 존 거트너의 표현을 잠시 빌면, 자연은 그야말로 '아이디어 팩토리'이고 '위대한 아이디어 제국'이다. 거트너는 최초의 통신위성, 최초의 휴대전화 시스템, 최초의 광섬유 케이블 시스템을 개발한 벨 연구소를 그런 위대한 아이디어 팩토리로 보았다. 하지만 결국 자연이야말로 명실상부한 아이디어 팩토리의 원조다.

대다수 과학자들은 자연을 발명과 발견의 멘토로 삼거나 창의적 영감의 뮤즈로 삼곤 한다. 과학자 재닌 베니어스가 말한 '생체모방'이 대표적이다. 생체모방은 "인간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자연에서 찾은 전략을 모방하는 행위"를 뜻한다. 국내에선 '생태모방'이라고도 한다. 가령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비행 기계는 박쥐의 날개를 모방한 것이다.

영국의 생물학자이자 야생동물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패트릭 아리는 《자연은 언제나 인간을 앞선다》(시공사, 2023)에서 "자연은 최고의 연구 개발 센터"라면서 매우 흥미로운 생체모방의 사례들을 소개한다. 가령 변장술과 위장술의 대가인 문어가 보안 감시 기술의 판도를 뒤집은 이야기, 미래의 항공기 안전에 혁명을 일으킨 갯가재 이야기, 미세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할 방안으로 거론되는 대왕쥐가오리의 이야기, 가시 범위가 180도에 이르는 바닷가재의 눈에서 착안한 엑스선 우주 망원경 이야기, 몸길이의 10배를 점프하는 덫개미의 턱을 모방한 재난 로봇 이야기 등이 그러하다.

고속열차는 새들로부터 어떤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까. 일본의 '탄환 열차'라 불리는 신칸센은 세 종의 조류에게서 큰 영감을 얻었다. 물총새, 올빼미, 아델리펭귄의 멘토링이 없었다면, 엄청 빠르고 조용한 신칸센도 없었다. 물총새가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는 공기역학 교사 노릇을 했다면, 올빼미는 극도로 조용히 날 수 있는 무음비행의 팁을 알려주었고, '날지 못하는 새' 아델리펭귄의 방추형 몸통은 독특한 반면교사가 되어주었다. 초기 신칸센 모델은 속도도 아쉽지만 소음 문제가 매우 컸다. 공학자 나카쓰 에이지는 쏜살같이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물고기를 낚아채는 물총새의 부리 모양에서 공기저항을 줄이는 신칸센 앞머리 설계의 단서를 찾았다. 거기에 더해, 올빼미 깃털의 톱니 모양과 아델리펭귄의 방추형 몸매에 착안해 집전장치를 다시 디자인했다. 덕분에 신칸센은 공기저항을 30퍼센트나 적게 받아 더욱 빠르고 변기 물 내리는 소리보다 더 조용하게 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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