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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 인생의 중간항로에서 만나는 융 심리학
제임스 홀리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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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백세시대다. 중년은 말그대로 '인생 이모작'을 위한 발판이 된다. 중년의 위기는 곧 재도약의 기회이기도 하다.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지혜를 구현할 수 있는 그런 소중한 기회 말이다. 융 심리학자 혹은 심층심리학자 제임스 홀리스는 중년의 위기를 인생의 '중간항로'에 비유한다. 중간항로는 성년기와 노년기 사이에서 한 인격을 재정의하고 전환할 수 있는 기회이자 통과의례다. 통과의례는 반복적인 수행이 요구된다. 십대에 유년기에서 성년기로 가는 통과의례를 거쳤어도 마흔이 넘어가면 다시금 중년 위기를 겪게 되는데, 이를 잘 넘기기 위해선 또다른 통과의례가 필요하다.
저자는 중간항로의 의제를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우리는 원래의 자기감을 어떻게 습득했을까? 중간항로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삶의 변화는 무엇일까? 자기감을 어떻게 재정립할 수 있을까? 카를 구스타프 융의 개성화 개념과 우리의 타인을 향한 헌신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개성화를 이루고 중간항로를 지나 어두운 숲에서 의미 있는 삶으로 이동하려면 어떤 태도와 행동 변화가 필요할까?"(9, 10쪽)
중간항로는 성격을 재정의하고 삶을 재검토하고 방향을 바꾸는 기회다. 부모, 사회, 문화가 물려준 성격인 '잠정 인격'에서 진정한 자기감을 확립하기 위해 갈등을 겪는 시기, 다시 말해서, 성격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시기가 바로 중간항로다. 중간항로에 들어서면 사회적 성격인 페르소나와 지금껏 억압해온 그림자가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림자는 분노, 이기심, 욕망, 질투 등 우리가 숨기고 싶어하는 내면의 모든 부정적인 부분을 의미한다.
"후천적 자기감은 내면아이를 지키기 위해 지각 및 콤플렉스와 결합하며, 스스로를 실현하려 애쓰는 더 큰 '자기'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35쪽)
중간항로는 의미 있는 삶으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1차 성인기'에서 '2차 성인기'로 넘어가는 문턱이다. 그런데 중간항로의 통과의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1차 성인기는 약 12세에서 40세까지의 기간이다. 전통 사회에서 소년이 어른이 되려면 통과의례를 거친다. 우리의 삶에 의미와 깊이를 부여하는 통과의례는 보통 '분리, 죽음, 재생, 가르침, 시련, 귀환'의 6단계로 구성된다. 저자는 전통 성인식이나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통과의례의 부재나 결여가 현대사회의 주요 문제나 적폐와 관련이 깊다고 지적한다.
중간항로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삶의 변화는 불치병, 사고, 배우자의 상실 등 극단적인 의식의 충격으로 인한 정체성 변화와 관련이 깊다. 유년기, 성년기, 노년기마다 고유한 특징적 사고패턴과 정체성 과제 그리고 정체성 축이 있다. 가령 유년기는 주술적 사고, 정체성 축은 '부모-자식' 관계라면, 1차 성인기는 영웅적 사고, 정체성 축은 '자아와 세계'이고, 2차 성인기는 현실적 사고, 정체성 축은 '자아와 자기', 그리고 노년기의 정체성은 '유한성'이고, 중심축은 '자기-신' 혹은 '자기-우주'이다.
융 심리학은 자아성숙의 길을 '개성화'라는 개념을 이용해 표현한다. 개성화는 운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한계 속에서 우리 모두가 온전한 자신이 되게 하는 개인발달의 필수 요소다. 내가 보기에, 융 심리학의 전반적인 개성화 단계는 결국 속박에서 갈등을 거쳐 자유의 주체로 나아가는 '성장 시나리오'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