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로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우울감 같은 기분장애를 자주 호소한다고 해서 정신병을 감기에 비유하는 것은 오해를 부르기 쉽다. 감기는 진단도 쉽고 약처방도 쉽지만, 정신병은 진단도 쉽지 않고, 약처방도 조심스럽다. 감기에 걸렸다고 자살하는 이는 없다. 그러나 중증 우울증은 자살 위험이 높다. 솔까말, 명확하게 '이러면 이거다' 할 수 있는 정신병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정신과 약은 완치가 아니라 완화나 경감 위주고, 약의 부작용은 콧물약에 비할 바 없이 훨씬 치명적이다.
뉴스와 영화 같은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조현병도 실은 여러 다양한 유형이 있는 조현병스펙트럼장애의 한 유형일 뿐이다. 그리고 세간의 편견과 달리 조현병은 스릴러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인 다중인격이나 인격분열과 연관이 없다. 조현병스펙트럼장애는 조현병 외에도 조현정동장애와 망상장애가 있다.
정신과 진단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오락가락 널뛰기도 한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 에즈메이 웨이준 왕의 경우가 그러했다. 저자는 시간순으로 양극성장애(조울증), 조현병, 조현정동장애 양극형과 특발성 말초신경증을 진단받았고, 이외에도 섬유 근육통, 복합PTSD, 자율신경실조증, 체위기립성빈맥증후군, 만성라임병 등 기타 질환도 달고 산다. 자칫 '의료쇼핑'이 의심될 정도인데, 갑 의사는 이런 진단을, 을 의사는 저런 진단을, 저자가 찾은 담당의사마다 다른 진단을 내린 셈이다. '걸어다니는 정신과'가 따로 없다. 정신질환의 원인은 크게 생화학적 원인, 유전적 원인, 환경적 원인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저자의 조현정동장애는 유전적 원인이 크다.
조현병은 전형적인 광기의 병이고, 망상과 환각이 주요 증상이다. 조현병의 실상을 대중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가이드 역할을 한 명작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천재 수학자 존 내시를 통해 조현병 환자의 발병 전의 비사교성 및 망상과 환각, 행동이상 같은 전조 증상들을 잘 묘사했고, 환자의 아내, 아들, 어머니, 친구들에게 미친 파괴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잘 재현했다.
조현병의 임상 증상은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긴장증적 행동 같은 양성 증상과 위축, 냉담, 사고 빈곤, 정서적 둔감 같은 음성 증상이 있다. 주로 발병하는 특정 연령대가 있는데 대다수가 17세에서 25세 사이에 발병하고, 14세 이전이나 30세 이후에 최초로 발병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저자의 경우는 조현병 가족력이 있고 십대 후반에 발병했다. 그래서 명문대 예일대에 입학했지만 정신병동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하고 만다.
이 책 『조율하는 나날들』(북트리거, 2023)은 정신질환 당사자의 체계적인 자기분석과 더불어, 조현정동장애와 고군분투하는 2인가족의 용기와 희망을 보여준다. "뼈아픈 개인사와 날카로운 탐구를 엮은 수작"이라는 리뷰평처럼, 개인 체험에 의거해 정신질환을 겪는 학생을 위한 대학 시스템 부재를 고발하고, 정신의학의 바이블 DSM에 따른 진단의 한계를 지적한 게 매우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