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이, 빈센트 - 반 고흐가 남긴 편지로 다시 보는 그림들
이소라 지음 / 미술문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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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흐의 그림에서 니체의 철학을 본다. 그리고 니체의 철학에서 고흐의 그림을 읽는다. 고흐(1853~1890)와 니체(1844~1900)는 내게는 동시대를 살다간 영혼의 쌍둥이와 다를 바 없다. 광기와 열정, 순수와 천재, 고독과 모태솔로 등 여러 공통점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철학과 예술을 자기서사의 정점으로 끌어올렸다는 게 가장 큰 공통점이 아닐까 싶다. 또한 둘 다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번뇌에 시달렸지만 매우 긍정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점도 그러하다. 치명적인 광기의 발작 시점도 비슷하다. 고흐가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른 날은 1888년 12월이고, 정신착란과 우울증이 심해지자 생 레미 드 프로방스의 정신병동에 스스로 입원한 날은 1889년 5월 8일이다. 공교롭게도, 니체가 광기 발작으로 쓰러졌을 때는 1889년 1월 3일이었고, 그후 바젤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 이소라는 고흐가 남긴 편지와 그림을 통해 어린 새처럼 불안에 떨던 영혼이 잠시 포근한 위안을 얻었던 자기 경험을 토로한다. 저자는 불꽃같은 열정의 예술가 고흐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자연을, 예술을, 평범한 사람들을, 자신의 인생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말이다. "나는 여전히 예술과 삶을 무엇보다 사랑해"라는 고흐의 잔잔한 고백이 아직 내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빈센트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았다.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어깨를 펴고 꿋꿋이 걸었다. 불행해질수록 그의 내면은 더욱 단단해졌고 희망은 굳건해졌다.”(13쪽)

고흐의 예술적 작업은 니체의 철학적 행동과 맞물린다. 가령 고흐의 「자화상」이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라면, 「감자 먹는 사람들」은 《비극의 탄생》과 맞먹고,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밀밭」이나 「별이 빛나는 밤」은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다를 바 없다. 니체가 자기서사적 철학의 극치를 보였다면, 고흐는 10년간의 그림 작업을 통해 자기서사적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고흐의 그림들은 예술가의 정체성은 물론 타자성에 대한 관심의 표현을 동시에 드러낸 철학적 표상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부러진 버드나무」와 「신발」이 대표적이다. 「부러진 버드나무」가 자연의 생명력과 동시에 실존적인 죽음에 대한 연민을 의미한다면, 「신발」은 고단한 삶의 우화이자 불운과 운명에 맞서는 인동초와 같은 고독한 예술가의 정체성을 표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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