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감 중독 사회 - 분노는 어떻게 정의감을 내세운 마녀사냥이 되었나?
안도 슌스케 지음, 송지현 옮김 / 또다른우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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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계기로 정의 담론이 우리 사회 전반을 휩쓸고 다닌 적이 있다. 문재인 정권 시절만 해도 '공정'과 '적폐청산'을 주요정책 과제로 삼아 정의감을 거의 으뜸 의제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정의는 언제나 뒤집기 한판이 가능한 공허한 수식어다. 가령 진보 진영의 적폐청산을 보수 진영은 정치보복으로 간주했다. 사실 정의와 정의감처럼 고귀한 단어도 없다. 하지만 정치판의 선전선동과 조작은 이를 매우 하찮은 수식어로 전락시켰다. 샌델과 같은 정치철학자의 고상한 정의 담론이 정작 정치판에서 전혀 맥을 못추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판에서 정의가 너무 쉽게 소비되고 낭비되고 있다. 그런데 정치판뿐만 아니라 디지털 온라인 세상도 정의감은 파도처럼 몰려왔다가 순식간에 사그러들고 만다. 인터넷 세상의 정의감 역시 너무 쉽게 생겨나고 눈 깜짝할 새에 소비되기를 반복한다. 온라인 무대의 왕따, 조리돌림, 마녀사냥, 악플러의 배후엔 왜곡된 정의감 혹은 '정의감 거품'이 존재한다. '키보드 워리어'라는 말처럼, 온라인에서 정의감을 칼처럼 휘두르며 화내는 사람이 넘쳐 난다. 

정의감의 표출은 언제나 사적 차원이 아닌 공적 차원이 중요한 법이다. 올바른 정의감은 으레 분노를 수반하기 마련인데, 그 분노는 사적 분노가 아니라 공적 분노다.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는 공적 분노를 담고 있어야 하지만,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목소리 밑바닥에 사적 분노는 물론 원망, 우울, 짜증, 무기력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곤 한다. 

정의의 반댓말은 부정부패, 부조리, 불공정, 불평등 등이다. 사회 차원에서 정의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적 차원에서 통쾌한 복수를 갈망하는 이들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는 바로 그런 대중의 갈망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학폭을 소재로 삼은 「더 글로리」를 비롯해 핫한 드라마의 태반이 사적 복수극이라는 점을 본다면,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불공정에 대한 원망과 지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만큼 우리 사회가 권선징악이나 사필귀정과 같은 '공정한 세계 가설'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공정한 세계 가설이란 "정의는 보상을 받고, 악은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 성실한 사람은 행복해지고, 게으른 사람은 불행해진다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우리는 이미 '정의감 중독 사회'에 진입한 것은 아닐까. 일본의 앵거 매니지먼트 협회 대표이사인 안도 슌스케는 툭하면 정의감을 내세워 마녀사냥을 일삼는 지경에 이른 작금의 사태를 고발한다. 그리고 정의감 중독의 유형을 크게 급성 정의감 중독과 만성 정의감 중독으로 구분하고, 만성 정의감 중독의 유형을 다시 다섯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고독한 유형, 질투 유형, 독선가 유형, 집단 심리 유형, 열등감 유형이 그것이다. 정의감 중독 유형은 행동력 정도와 정보에 대한 민감성(정보력) 정도를 조합한 결과다. 가령 고독한 유형은 행동력이 높고 정보력은 낮은 사람이고, 질투 유형은 행동력도 높고 정보력도 높은 사람이다. 독선가 유형은 행동력이 낮고 정보에도 둔감한 편이며, 집단 심리 유형은 행동력이 낮고 정보력은 높은 사람이다. 열등감 유형은 행동력과 정보력 둘 다 중간 정도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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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7 16: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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