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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은 이렇게 말했다 - 최인훈과 나눈 예술철학, 40년의 배움
김기우 지음 / 창해 / 2023년 2월
평점 :
문학 스승에 대한 사랑과 존경, 요즘 말로는 '추앙'이 듬뿍 담긴 문학 노트를 발견했다. 소설가 김기우가 제자의 눈으로 문학 거장 최인훈의 문학과 예술 그리고 작품세계를 밀착취재한 꽤나 두꺼운 노트다. 무려 40년 동안의 기록이니, 그 한결같은 열정과 사랑이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서울예술대학 문창과 시절부터 기록한 수업 노트와 일기, 그리고 스승의 문학작품에 근거해, 최인훈의 문학세계를 정밀하게 그려보려는 시도를 감행한다. 저자는 최인훈 작가의 평생주제로 "우연에 의한 세상의 진화, 현실의 황당함에 무너지는 이상적인 이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과학의 법칙 등"을 꼽는다.
이 책 『최인훈은 이렇게 말했다』(창해, 2023)는 적재적소에 최인훈 작품의 담론을 적극 인용하고 있는데, 최인훈의 문학과 예술 그리고 인생철학을 폭넓게 그려보인다. 한국 문학에 흥미가 없는 문외한도 최인훈의 대표작 『광장』 이나 『회색인』에 대해선 꽤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두 작품 모두 문학의 현실참여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잘 드러나 있다. 먼저, 『회색인』의 주인공은 소설을 쓰는 국문학도 독고준이다. 독고준은 행동대장이 아니라 회색의자에 묻혀 사유를 즐기는 사색형 인간이다. 『회색인』은 4.19 혁명 직전의 시공간을 무대로 청년의 고뇌와 허무를 명철하게 그리고 있다. 한편, 소설집 『광장』은 사실주의 계열의 『광장』과 환상주의 계열의 『구운몽』이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광장』이 4.19 혁명과의 조우라면, 『구운몽』은 4.19 이후 5.16의 악몽을 표현한 작품이다. 『광장』의 주인공은 제3국으로 향하는 타고르 호에 탑승한 전쟁포로 이명준이고, 『구운몽』의 주인공은 간판공으로 일하는 조용한 청년 독고민이다. 『광장』은 이념과 이데올로기, 체제 비판의 색채가 짙지만, 결국 이념과 사상보다는 사랑의 힘을 부각시켰고, 소설가 김기우의 말대로, '벗'도 '적'도 아닌 '사랑'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이성을 원한다는 메시지로 읽히기도 한다.
문창과 '소설창작' 수업의 교재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었다. 구보는 원래 소설가 박태원의 호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구보 박태원의 동명 단편소설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총 15편의 단편소설로 엮어진 단행본이다. 소설가 김기우는 "구보 씨는 문장의 기교를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작가의 일상을 낱낱이 알게 되어 좋았다. 선생님 세대의 문단 풍경도 그대로 드러나고 예술가들의 사회 인식, 예술관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술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