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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의 종말 - 우리는 왜 일에 지치고 쓸모없다고 버려지는가
조나단 말레식 지음, 송섬별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2월
평점 :
우리 사회는 번아웃과 우울증이 극심한 사회다. 당신 옆집의 아줌마나 윗층 수험생이나 아래층 어르신이나 모두 번아웃과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번아웃과 우울증은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징후이기도 하지만, 초고령사회의 우울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은 청년, 중년, 노년할 것 없이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 새하얗게 불태우는 '탈진남녀'들이 대다수다. 일벌레, 즉 '워커홀릭'을 자랑스러워 하던 산업시대 논리가 탈산업시대인 지금까지도 여전히 당연시되고 있다. 과로사를 야기하는 과열된 직장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벨' 긴급구호가 각종 미디어 마당을 휩쓸고 다녔지만, 결과는 매우 역설적이다. 번아웃의 종말은커녕, '워라벨'이 오히려 재충전과 휴식이 아닌 무기력과 과로를 한층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워라벨은 성취감과 성공의 또다른 목표가 되었다.
번아웃 증후군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정신적인 극도의 피로감으로 인해 무기력,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이다. 연소 증후군, 탈진 증후군 등으로도 불리는데, 197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가 최초로 사용한 용어라 한다. 그런데 번아웃 담론은 역사적 계보가 있다. 작금의 사회가 경쟁이 치열한 각자도생의 정글사회라서 불연듯 튀어나온 돌연변이가 아닌 것이다. 비록 명칭은 다르지만, 멜랑콜리와 아세디아, 신경쇠약증 모두 당대의 번아웃 현상이었다. 시대에 따라 병명과 처방은 달랐지만, 결국 이상과 현실, 다시 말해서 일에 대한 이상과 일의 현실 사이의 간극이 원인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소진, 냉소주의, 좌절을 유발한다." 잊지 말자, 번아웃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학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번아웃 문화는 불평등, 자율성 결여, 공동체 붕괴, 가치의 불일치 등과 그 궤를 같이 한다. 게다가 개인별로 나타나는 번아웃 현상은 "다양한 형태의 여러 경험으로 이루어진 스펙트럼"의 특징을 보인다.
신학자 출신의 에세이스트 조나단 말레식은 개인의 번아웃 경험을 계기로 번아웃 문화의 심층을 파헤친다. 저자가 활용하는 탐구 도구는 "과학적 글과 역사, 문화 분석과 철학, 몰입 취재와 회고록" 등이고, 주로 유급 노동에서의 '번아웃 스펙트럼'을 고찰한다. 여기서, 번아웃이란 "일에 대한 우리의 이상과 직업의 현실 사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분투하는 경험"을 말한다. 그리고 번아웃 테스트로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마슬라흐가 개발한 심리척도 검사인 '마슬라흐 번아웃 인벤토리'가 소개된다. 가만 있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맞다, 스탠퍼드대 교도소 실험으로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의 아내가 바로 크리스티나 마슬라흐다. 마슬라흐의 번아웃 모형은 소진, 냉소주의, 무능감을 강조한다.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잠재적인 번아웃 환자다. 우리가 실제로 하는 일이 우리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과 괴리가 일어날 때 번아웃을 겪게 된다. 그런데 다른 이들보다 번아웃에 더 취약한 족속이 있다. 바로 헌신적이고 전념하는 '선한' 노동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