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 - 조선인들의 들숨과 날숨
송순기 지음, 간호윤 엮음 / 경진출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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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의 주류는 기담이다. 기이한 인물과 기이한 사건이 등장하는 게 야담의 본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1920년대 기자 출신의 문인 물재 송순기(1892~1927)가 편찬한 신문연재본 《기인기사록》은 우리 선조들의 기담 코드를 잘 대변하고 있는 야담집이라 할 수 있다. 구활자본 야담집 《기인기사록》은 모두 상·하권 총 107화로, 상권은 51화 203쪽, 하권은 56화 195쪽이다. 국문학자 휴헌 간호윤은 상권 51화 가운데 27개의 이야기를 골라, 이를 번역하고 현대인이 읽기 쉽도록 주해를 달고 그림과 사진을 삽입해 넣었다. 그런데 선별기준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휴헌은 야담을 "우리네 부대끼는 삶의 실개천에서 건져 올린 초승달"에 비유한다. 그리고 "엷은 담묵 기법의 수묵화"에다 빗대기도 한다. 부제가 "조선인들의 들숨과 날숨"임을 보면, 야담을 조선 사람들의 일상적 속살을 들춰낸 이야기로 높이 평가한 셈이다. 정말 후하고 점잖은 평가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야담은 까놓고 말하면 가부장적 속물 판타지다. 

남녀의 인연을 다룬다면 거개가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혹은 '우렁이 각시' 스타일이다. 불우하거나 평범한 사내가 현숙한 아내를 만나 입신출세하거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구국의 영웅이 되는 판타지가 대표적이다. 삼강오륜과 인의예지를 강조한 내용도 적지 않겠지만, 그건 구실이나 껍데기일 뿐이고 알짜는 '운명적인 만남'을 동경하는 양반층의 달콤한 로맨스 판타지다. 조선 선조 때의 의병장 김천일의 아내 얘기도 그러하고, 광해군과 인조 때의 문신 동계 정온과 어린 계집 종의 얘기도 남성 판타지의 전형이 어떠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연산군 때 갑자사화의 화를 당한 교리 이장곤과 천한 유기장의 딸과의 인연 얘기는 벽초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과도 연관돼 흥미롭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임꺽정》 권1은 이장곤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보성 유기장의 딸이 소설에선 함흥 백정의 딸 봉단으로 나온다. 봉단은 이장곤과 함께 한양에 가 교육을 받으면서 양반 규수로 승격된다. 이 봉단의 외사촌이 임돌이고 임돌의 아들이 임꺽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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