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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뇌 - 뇌과학이 발견한 기억의 7가지 오류
대니얼 샥터 지음, 홍보람 옮김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2월
평점 :
어디 보자, 내가 일상에서 자주 범하는 기억 오류는 몇 가지나 될까. 흠, 건망 혹은 깜박(안경을 어디에 두었더라), 착각(문을 잠갔는지 안 잠갔는지 헷갈린다), 가물가물(드라마는 챙겨 보면서 정작 왜 주연배우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 휴, 그래 이렇게 세 가지 정도 될 것 같다. 반백의 나이도 문제지만 아무래도 코로나 후유증으로 인한 브레인 포그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빈도와 기억력 감퇴의 속도가 정비례하는 것 같다. 뭐, 허기사 세월에 장사없다고, 꽤나 인간적인 실수다. 컴퓨터나 인공지능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실수 말이다. 그런데 심리학자가 말하는 기억의 오류는 이 세 가지보다 훨씬 다양하다.
미국 하버드대학 심리학과 교수 대니얼 샥터는 《도둑맞은 뇌》(인물과사상사, 2023)에서 이십 여년간 심리학과 뇌과학 연구가 밝힌 기억의 일곱 가지 오류를 자세히 알려준다. 바로 '소멸, 정신 없음, 막힘, 오귀인,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이다. 기억 오류는 크게 "기억해야 할 것을 잊는 오류"와 "기억의 오작동에 의한 오류"로 양분할 수 있는데, 전자가 소멸, 정신없음, 막힘의 경우고, 후자가 오귀인,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의 경우다.
소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사라져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없음은 주의력과 기억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을 말한다. 가령 안경을 둔 곳을 잊거나 열쇠를 잃어버리고 약속을 까먹은 경우다. 막힘은 정보를 불러오려고 애쓰지만 정보 찾기에 실패한 것을 의미한다. 내가 앞서 말한 '건망'이나 '깜박'이 바로 주의력의 약화나 분산으로 일어난 정신없음이고, '가물가물'이라 했던 게 바로 '막힘'이다. 소멸, 정신없음, 막힘 모두 기억해야 할 것을 잊는 오류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기억하고자 하는 사실나 사건, 생각을 머릿속에서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오귀인,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은 모두 기억의 오작동에 의한 오류다. 이를테면 어떤 형태의 기억은 머릿속에는 존재하지만, 그 내용이 부정확하거나 원하는 기억이 아닌 것이다. 오귀인은 환상을 현실로 오해하거나 신문에서 본 내용을 친구가 해준 말로 잘못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피암시성은 과거의 경험을 끄집어내려고 할 때 유도 질문이나 암시에 의해 기억이 주입되는 것을 말한다. 편향은 현재의 지식과 믿음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지속성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우고 싶은 걱정스러운 생각이나 사건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것을 말한다.
기억의 오류 유형과 연관된 사례나 연구결과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소멸ㅡ기억의 망각 곡선
▶정신없음ㅡ자동차에 두고 온 아이
▶막힘ㅡ고유명사 실어증
▶오귀인ㅡ실제로 만난 적이 없는 사람(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편소설 「유미우라시」)
▶피암시성ㅡ일어나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거짓 자백과 목격자의 기억 불신 증후군)
▶편향ㅡ가짜뉴스와 인종 편견
▶지속성ㅡ트라우마 경험 이후
그런데 기억은 왜 불안전할까? 저자는 기억의 오류가 마냥 나쁜 것만이 아니라 나름의 장점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앞서 언급한 기억의 일곱 가지 오류는 기억 체계에 내재하는 단점을 나타낸다기보다는 기억이 지닌 적응력과 유연성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