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래가 있던 자리 - 중세 유럽의 역사에서 발견한 지속 가능한 삶의 아이디어
아네테 케넬 지음, 홍미경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2년 12월
평점 :
노동은 불안정하고 관계는 불확실하며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온갖 병폐는 '신자유주의'라는 커다란 항아리에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는 노동 시장의 유연화, 금융 제도의 규제 완화, 사회 안전망의 파괴, 리스크의 사유화, 개인주의와 자립의 문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은 개인 차원의 원자화, 관계 차원의 소외와 불평등, 돌봄 공동체의 몰락 그리고 생태환경 차원의 전면적인 붕괴를 불러왔다. 특히 자원의 한계, 환경오염과 기후위기 등 생태계의 전면적인 위기는 21세기 현안 과제로 급부상했다. 지속가능한 삶은 더이상 일부 전투적인 낭만주의자의 노래가 아니라 지구인들이 생존을 위해 다함께 올인해야 하는 유일한 길이다.
신자유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치료제를 중세 유럽의 역사에서 구해볼 수 있을까. 독일의 역사학자 아네테 케넬은 주저없이 '네'라고 답한다. 중세 사람들의 결코 전근대적이지 않은 삶의 방식에서 지속 가능한 삶의 현실적인 가능성을 보았다고 말이다. 근대 이전에 이미 공유경제, 리사이클링, 크라우드 펀딩, 기부와 재단, 미니멀리즘 등 미래지향적인 실천이 실행되고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기에 반박의 여지가 없다.
이를테면 어부조합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한 규정을 만들고 지켜왔던 독일 호수 보덴호 사례(공유경제), 고대 로마의 욕실 바닥판 혹은 놀이판을 재활용해서 만들어진 카를 대제의 의자(리사이클링), 물살이 센 론강을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 시민들의 모금으로 건설된 아비뇽의 생베네제 다리(크라우드 펀딩), 당대 경제호황의 수혜자인 거부 야코프 푸거가 사회공헌을 위해 세운 사회주택단지 푸거라이(기부와 재단), 모든 소유를 거부하고 자연과의 일치를 추구했던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미니멀리즘) 등 중세의 지속 가능한 순환경제가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