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
구마 겐고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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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건축가가 있다. 바로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 구마 겐고다. 그래서 나는 구마 겐고가 건축의 주류담론에 저항하는 일종의 '반건축가'라고 생각한다. 가령 그는 현대 건축의 양대 사조라 할 수 있는 모더니즘 건축과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에 모두 딴지를 건다. 공업화 시대의 전형에도 탈공업화 시대의 전형에도 위화감을 갖는 진정한 반건축가인 셈이다. 가령 모더니즘 건축의 공업화 시대적인 균질주의에,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장식 추구에도 위화감을 가진다. 현대성과 공업화 사회, 그리고 상자 건축에 대한 구마 겐고의 비판은 일관적이다. 구마 겐고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경계인'이란 표현을 무척 맘에 들어하는데, 스스로를 두 가지 문화적 가치 체계의 경계에 선 경계인으로 평한다. 그래서 대중언론도 구마 겐고를 '경계 건축가'로 자주 묘사한다. 

구마 겐고는 글쓰기 재주도 좋은데,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도시와 지방 사이를 오갔던 경계인으로서의 성장기를 강조하고, 건축 철학의 문제에 있어서 언제나 전통과 모더니즘의 역학 관계를 고려하는 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전통에 대한 재평가와 맞물리는데, 구마 겐고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구마 겐고의 건축 철학은 '삼저주의', 즉 작고, 낮고, 느린 건축을 추구한다. 모더니즘 건축이 '이기는 건축'이라고 한다면, 구마 겐고는 '지는 건축'을 지향하는 입장이다. 구마 겐고가 사회학자는 아니지만, 그의 일관된 20세기 비판이나 공업화 사회 비판은 반건축가로서 갈고 닦은 사회학적 상상력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 

구미 겐고의 작품 활동은 크게 네 시기로 구분된다. 제1기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치달았던 '뒤죽박죽' 시기다. "자유롭고 뒤죽박죽인 것을 지향할 뿐 아니라 남루함을 동경하고 남루한 것을 만들려고 했다." 제2기는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지방을 다니면서 현지의 재료를 사용하는 '작은 건축' 방식을 새로 깨달은 때로, 이른바 '재생의 10년'이었다. 제3기는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전 세계의 다양한 장소에서 커다란 규모의 프로젝트 활동을 벌인 시기다. 그리고 제4기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로, 2020 도쿄올림픽 국립경기장 설계를 맡는 등 사회적 지명도를 널리 알릴 수 있었다. 

구마 겐고는 자신을 '삼륜차'에 비유한다. 차를 움직이는 세 바퀴는 대규모 건축과 작은 건축, 그리고 글쓰기다. 대규모 프로젝트와 작은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병행하여 디자인하고 있는데, 보다 실험적인 작은 건축의 축적이 대규모 건축물의 성과로 이어지는 식이다. 대규모 건축과 작은 건축은 소설가의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에 비유할 수 있다. 작은 프로젝트는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실험적인 과감한 도전을 해볼 수 있고, 대규모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과 조직이 관여하고 긴 시간이 소요되며 시스템에 옥죄이는 단점이 있지만 장점도 그만큼 크다. 

"대규모 건축은 넓은 범위를 가진 지역에 영향을 끼치거나 지역의 분위기, 인간관계를 바꿀 수 있고 도시나 커뮤니티의 이미지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완성된 대규모 건축물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생활의 터전이 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영향을 끼친다. 그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치거나 삶의 방식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11쪽) 

하이데거는 “건축은 탑이 아니라 다리”라고 했다. 구마 겐고가 설계한 건축물들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계, 이편과 저편을 연결하는 다리이자 터널이며, 구멍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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