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 - 소외된 노동계급의 목소리에서 정치를 상상하기
제니퍼 M. 실바 지음, 성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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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동계급의 맨얼굴을 보려면, 최하층 노동자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으려면, 그리고 전반적인 노동계급의 삶과 문화, 불평등한 삶의 조건을 면밀히 살피려면, 제니퍼 M. 실바의 연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회학자 제니퍼 M. 실바는 미국 동부 탄광촌 콜브룩의 노동자들의 삶을 크게 인종과 젠더라는 두 축으로 살피고 있다. 크게 백인 남성과 여성, 흑인 및 라틴계 남성과 여성 네 집단으로 나누어 노동계급 내부의 차이에 주목한다. 네 집단이 보여주는 정치적 성향이나 정당 정체성은 어떠한지, 신자유주의가 설계한 삶의 굴레를 헤쳐나가는 개인적인 생존 전략은 무엇인지, 심층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먼저 저자는 백인 노동계급 남성들의 정체성과 자아상을 들려준다. 이들은 가부장적 자부심과 남성성에 큰 상처를 입은 나머지, 고립감과 상실감을 토로하거나 애써 과장된 마초 이미지를 연출한다. 

"20세기 중반 몇십 년간 백인 노동계급 남성들은 자유를 장애물의 부재 이상으로, 경제적 안정의 기초로 재정의하고 기업 권력을 상대로 조직을 결성했다. 탄광, 제철소, 조립 라인의 백인 블루칼라 남성들은 미국이 전 세계 제조업을 지배하는 상황에 자극받아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집단적인 감각에 사로잡힌 듯했다. 활기 넘치는 교회 축제와 소방대가 벌이는 소란스러운 동네잔치, 북적대는 금요일 밤의 풋볼 경기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콜브룩의 백인 노동계급 남성들은 고립감, 목적 상실, 억울함을 토로한다. 이들 모두는 정치 영역에 잠정적으로만 소속감을 느끼고, '미국'이 개인의 탐욕보다 더 큰 무언가를 상징한다는 확신을 스스로에게 심어주기 위해 애쓴다. 이들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산업 노동계급 남성성의 잔해들을 재배열하거나 칭송하거나 해체하는 일을 떠맡고 있다."(135쪽)

그럼, 백인 노동계급 여성들은 어떠할까. 저자는 이들이 젠더, 일자리, 대대적인 가정의 변화 등을 어떻게 상대하고 있는지 살핀다. 가령 탄광촌 백인 여성들은 '수치심', '역겁다', '쓰레기' 같은 자조적인 단어를 자신을 묘사하는 데 사용한다. 백인 노동계급 여성들은 아내와 어머니라는 종속적인 역할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 역할의 상실을 애석해한다.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역할을 지키려 악전고투하지만 성적 학대나 약물중독, 이혼과 같은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것이다.

한편, 콜브룩에 새로이 이주한 흑인과 라틴계 남성들은 자신들의 일상 생활에 충만한 가난과 인종주의를 비판하면서 '복지 이주민', 마약 거래상, 범죄자들이라는 백인들이 붙인 부정적인 꼬리표에 저항한다. 이들에게 콜브룩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징검다리와 같다. 마약을 팔고, 감옥에 가고, 폭력을 저지르고, 상처를 받거나 취약하기만 했던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로 악착같이 탈바꿈시킬 수 있는 장소로 여기는 것이다. 

흑인과 라틴계 여성들은 어린 시절의 학대와 방치, 가난, 동네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범죄, 마약 남용의 이야기로 구성된 트라우마로 가득한 과거사를 짊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심리적 트라우마는 스스로 치유하겠다고 굳게 결심하면서 홀로 설 가능성을 모색한다. 가난과 인종차별로, 홀로서기는 정말 쉽지 않다. 불신과 배신의 골이 너무 크기에, 직계 가족 이외의 인간관계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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