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종교학자 정진홍의 신 이야기에서 뭔가 비교종교학이나 정통신학의 신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졌건만, 왠걸 '신에 대한 이야기'와 '신이 하는 이야기'를 뱅뱅 돌면서 뭉그적거리는 느낌이 있다. '신 이야기'라는 주제가 썩 선명하지 않다는 밑밥을 깐 후에 이게 신에 대한 이야기인지 신이 하는 이야기인지 모호하다며 변죽을 울린다. 그렇게 저자의 신 이야기는 일종의 짬뽕식 즉문즉설이 되고 만다. 신은 '비일상적인 것'을 지칭하는 일상의 언어이지만, 종교에서 신은 창조주, 초월적인 신비로운 실체, 절대적인 존재, 전능한 힘의 담지자, 유일한 존재를 말한다. 유일신을 강조하는 일신교 맥락에서 신은 절대적이고 배타적이다.
무신론자가 거두절미하고 제기하곤 하는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 저자는 진지하게 이렇게 답한다. "신은 있다는 사람한테는 있고, 없다는 사람한테는 없어."라고 말이다. 또한 단순히 신의 실재 여부를 묻는 물음을 살짝 비틀어 신의 고향은 어디인지 자문하고는, "신의 고향은 인간의 마음을 담은 몸이다"라고 자답한다. 이어서 "신의 주거는 어디인가?" 묻는다. 교회나 성당, 법당이라는 뻔한 답 대신에, 저자는 우리의 마음이 곧 신이 거주하는 거룩한 공간이라고 강조한다.
비교적 흥미로운 질문은 "신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대목이다. 신은 그와 만나는 사람의 만남 동기에 따라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면서, 신과 인간의 관계성에 대해 성찰한다. 결국 신은 나를 닮는다. 내가 겸손하면 신도 겸손해지고, 내가 오만하면 신도 오만하고, 내가 행복하면 신도 행복하다는 논리를 설파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신의 삶이 곧 인간의 삶이고, 인간의 삶이 곧 신의 삶이다. 이처럼 저자의 신 이야기는 결국 '천인합일'이라는 오래된 결말을 예고하는 변주곡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