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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인생
저우다신 지음, 홍민경 옮김 / 책과이음 / 2022년 11월
평점 :
중국 작가 저우다신의 《우아한 인생》(책과이음, 2022)은 겉보기엔 먹물 소설, 즉 교수나 학자 같은 지식인 계층이 등장해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그런 이야기 같다. 우리나라 탑골 공원처럼 노인들이 자주 모이는 베이징의 장수 공원에서 매일 밤 황혼 녁 펼쳐지는 장수 관련 약품을 광고하는 홍보꾼들의 현란한 멘트조차도 최첨단 과학연구의 간추린 보고서 같다. 이를테면 인공지능 간병 로봇 쇼케이스, 노화를 늦춰주는 장수환 판매, 가상 회춘 안티에이징 기술 체험, 미래 인류 수명에 관한 강좌 등은 독자들에게 수명연장을 꿈꾸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일종의 바람잡이 노릇을 한다. 그리고 지식인 소설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먹물과 꼰대들에 대한 풍자적 시각도 어느 정도 담겨 있다. 그래도 이야기의 핵심은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이 필요한 한 인간의 노년기를 극화한 것이다.
진시황이 바라던 장로불사의 꿈은 헛되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백세시대가 도래했고, 수명연장의 꿈이 더이상 가상이 아닌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을 품고 있는 분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노화의 현실은 여전히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암, 치매, 뇌졸중, 심근경색, 배변장애 등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에 시달리며 인간 존엄성의 마지노선이 어디까지인가를 매일마다 실험하는 어르신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수 공원에서 삼일 동안 자신이 오랫동안 간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정 상주 간병인 중샤오양의 회고담은 이른바 '우아한 인생'의 필요충분조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노년의 삶과 질병, 죽음에 대한 준비는 어떠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숙고하게 만든다.
은퇴한 퇴직 판사 샤오청산(73세)의 집에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 간호사 중샤오양이 간병인으로 들어온다. 원래 그 집에는 아버지 청산과 딸 신신(30대 중반), 사위 창성까지 총 세 식구가 살고 있었지만, 장인과 사위의 관계가 터지기 일보 직전인 화약고 수준이라 사위와 딸은 결국 분가해 나가버리고 만다. 외동딸에 대한 사랑이 끔찍할수록 사위에 대한 미움의 골도 깊어만 갔다고 할까. 아무튼 간호대를 나온 전문인력답게 중샤오양은 샤오 할아버지를 정성껏 보살핀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목숨을 구한 적도 여러 번이다. 무술 고단자 출신의 샤오 할아버지는 성격이 괄괄한 편이라, 자신을 노인 취급하는 이들에게 매우 까칠하게 군다. 법학자가 되기 위해 세 권의 대작을 집필할 계획인데, 자료 수집에 열심인 와중에 쓰러지고 만다. 이때부터 집필은 미뤄두고 건강과 장수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게 되는데, 용하다 해서 만나는 이 모두가 사기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