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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가죽 양탄자 ㅣ 웅진 세계그림책 233
제럴드 로즈 지음, 허은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11월
평점 :
말못하는 짐승이 은혜를 갚았다는 전설과 민담이 있다. 호랑이가 꿩과 노루를 어머니 방 발치에 갖다놓고, 까치나 꿩이 종을 쳐 은인의 목숨을 구하고, 두꺼비가 독지네를 물리치고 제물로 바쳐진 소녀를 구하는 설화는 매우 유명하다. 제럴드 로즈의 『호랑이 가죽 양탄자』(웅진주니어, 2022)도 결국은 동물이 은혜를 갚았다는 류의 현대판 설화다. '호랑이의 보은'에 해당하는 이야기랄까. 다만 은혜를 갚기까지의 우여곡절이 참으로 개구지다. 오랫동안 굶주려서 연약해진 호랑이가 궁에서 쓰이는 호랑이 무늬 양탄자로 가장하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코믹하게 다루고 있다. 비록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까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정겨운 느낌이 물씬 나는 고전 그림책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데, 죽지 않고 아직 살아 있으면서도 호피를 자청한 늙은 호랑이가 여기 있다. 먹이를 사냥할 능력을 상실한 늙은 호랑이는 굶주림으로 죽어갈 운명이다. 그런데, 굶주려 종이장처럼 홀쭉해진 요놈의 호랑이는 기특하게도 잔꾀를 낸다.
가끔 먼 발치서 창문을 통해 왕궁에서 차린 진수성찬의 저녁 식사 광경을 엿볼 때가 있었는데, 자기도 그 자리에 있고 싶다는 욕망을 품곤 했다. 어느날, 궁전 마당에서 양탄자를 터는 하인이 등을 돌리는 틈을 타 담을 넘어 낡은 호랑이 가죽 양탄자를 숨기고 대신 자신을 빨랫줄에 널었다. 다행히 궁에 들어간 호랑이는 성공적인 기생충 생활을 이어간다. 다만 세탁물을 방울방울 떨구며 빨랫줄에 매달리고 하인의 방망이질 같은 수모를 견뎌야 했지만 말이다. 잘 알다시피, 고양이과 동물은 물을 싫어한다. 그래도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다면 충분히 참을 수 있는 굴욕과 수모였다. 잘 먹고 잘 지내다 존재가 탄로 날 위기에 놓이지만, 궁궐에 든 강도들을 잡으면서 궁의 든든한 가족 구성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제는 눈치 안 보고 당당히 궁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해피엔딩이라 절로 웃음 짓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