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물었다, 삶이 응했다

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 가운데 가장 오랜 것은 사랑을 노래한 연가가 아니라 죽음을 노래한 애도가다. 백수광부의 아내가 부르는 「공무도하가」가 대표적이다. '공무도하, 공경도하', 구슬픈 아리랑 선율에 따라 고조선 사람들의 노랫가락이 울려퍼지는 것 같다. 백수광부의 죽음은 아름다운 죽음이 아니다. 죽음이 아름답지 못한데, 그 삶이 아름다웠을까. 나는 '삶이 아름다운 사람은 죽음도 아름답다'는 말을 믿는다. 정신과 의사이자 호스피스의 대모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 따르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가 있다. 바로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다. 백수광부의 아내도 이 다섯 단계를 잘 거쳤을까. 보아하니, 그러진 못한 것 같다. 백수광부의 죽음은 아내가 예상했던 바일까 전혀 예기치 못한 바일까. 아무튼 갑작스러운 죽음이기에, 분노와 상실감과 절망감의 깊은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이내 남편 뒤를 따랐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시시각각 삶과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는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해 어떤 성찰을 보여줄까. 노인의학 전문의이자 브라질 완화의료 최고 권위자인 아나 아란치스의 목소리에 잠시 귀기울여 보자. "죽음은 삶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훌륭한 이유가 된다." 맞다, 자고이래 현명한 철학자와 고매한 사상가들이 삶은 곧 죽음의 예행연습이라고 했고, '메멘토 모리'를 설하며 삶을 의미있게 하려면 바로 지금 죽음을 진지하게 성찰하라고 조언했다. 삶의 끝자락을 수도없이 목격한 저자 역시 그런 맥락에서 죽음을 이야기하고, 완화의료의 현실에 대해 알려준다. 

"완화의료란 삶의 끝자락에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 특히 통증을 완화시켜 인간이 존엄성을 가지고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하는 돌봄의 의학이다. 신생아실에 소아과 전문의가 있듯이 우리의 마지막에는 완화의료 전문가가 있다. 완화의료자를 흔히 안락사 시켜주는 의사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완화의료는 오히려 안락사를 막아준다. 통증이 없어지고 증상이 좋아지면, 환자는 죽음을 찾아가는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10쪽)

웰다잉의 조건은 무엇일까. 적당한 때에 찾아온 자연스러운 죽음일까.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마지막 작별을 나눌 수 있는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일까. 저자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넘어 아름다운 죽음을 유도하고 보조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다. 

“사람들은 결국 살아온 대로 죽는다.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가질 가망도 없다."(78쪽)

우리는 죽음을 존중해야 한다. 산 자도 죽어가는 자도 죽음을 존중해야 하고, 죽음에 대한 존중은 우리의 선택에 균형과 조화를 가져다 준다. 아름다운 죽음과 좋은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이라면 아름다운 삶과 좋은 삶에 대한 의식적 각성도 뒤따르기 마련이다. 죽음에 대한 존중은 "가치 있는 삶의 의식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삶의 마지막 문턱에서 죽음을 용감히 마주하고, 더불어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남겨질 가족의 상실감을 배려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죽음이 바로 아름다운 죽음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