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열기는 사람을 보수적인 고등침팬지로 만들어 버린다. 민족과 국가, 피와 땀, 위계와 질서, 애국심과 승패의 역학에 휘말려, 스포츠에 별다른 취미가 없던 건전한 양식의 시민을 꼭두새벽 축구 경기에 열광하는 광신도로 탈바꿈시킨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와 그들'의 분열과 대립, 경쟁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처럼 인식되고, '적자생존'은 축구판이라는 사회적 놀이터의 기본룰처럼 정당하게 작동하게 된다. 축구에 들뜨고 설레고 열광하는 모습을 한걸음 물러나 지켜보니, 파시즘이 좋아할 만한 구석이 많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사회철학자 제이슨 스탠리는 《우리와 그들의 정치》(솔, 2022)에서 오늘날 전세계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파시즘 정치의 패턴과 전략을 파헤친다. 가령 '우리 대 그들'의 갈라치기나 거짓 신화와 혐오의 열 가지 정치기술이 대표적이다. 파시스트 정치 전략 열 가지는 바로 '신화적 과거, 프로파간다, 반지성주의, 비현실성, 위계, 피해자의식, 치안, 성적 불안, 전통에 대한 호소, 공공복지와 통합의 해체' 등이다. 이들 전략은 '우리 대 그들'의 갈라치기에 기반하는데, 일단 '그들'이 되면 비인간화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 소수민족, 노동자계급, 소수자들은 언제든 '우리'의 권리와 이익을 침탈하는 위험하고 해로운 '그들'로 간주되고, 이내 쉽게 주변화되거나 비인간화된다.
저자는 거짓 신화에 기대어 불관용과 외국인 혐오, 공포를 조장하는 현대판 파시즘의 여러 사례들을 언급하는데, 민주주의 사회의 불안정과 경제적 위기 속에서 파시즘의 정치 전략은 언제든 시민을 설득하고 선동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