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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평점 :
1.5배속, 내가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하는 속도다. 2배속도 해봤지만, 내 귀에 가장 편히 들리는 속도는 1.5배속이었다. 대하 드라마를 '빨리 감기'로 본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본 적은 없다. X세대로서, 영화를 제대로 보려면 빨리 감기는 금기라고 믿고 있다. 나는 영상과 음향을 송출하는 그 미디어에 적합한 속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만화책도 그 나름의 적절한 속도가 있다. 새로 나온 만화책을 살피느라 빨리 훑고 지나가다보면 재미난 만화를 놓치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영화는 두 시간짜리도 지겹게 느껴지지 않지만, 유튜브는 이십 분이 넘어가면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일본의 칼럼니스트 이나다 도요시는 일본의 MZ세대가 영화나 영상을 빨리 감기로 재생하면서 보는 현상에 주목한다. 그 현상의 배후에 '콘텐츠의 공급 과잉', '시간 가성비 지상주의', '친절해지는 대사'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봐야 할 작품이 너무 많아졌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영상을, 가장 값싸게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둘째, 시간 가성비를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나,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빠르게 알고 싶어 하기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장면이나 회차를 건너뛴다. 셋째, 영상 언어가 쉽고 친절해졌다. 덕분에 집중력 없이 대충 보더라도 내용 파악이 용이해졌다.
이제 우리는 영상을 감상하지 않고 소비한다. 한마디로, 작품이 콘텐츠로, 감상이 소비로 변화한 것이다. ‘빨리 감기(배속), 건너뛰기(스킵), 패스트무비(몰아보기)'라는 현상 이면에 숨은 미디어 소비 논리와 라이프 스타일 변화는 독일의 문예사상가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사유한 일련의 테마를 떠올리게 한다. 이를테면 대량복제기술이 전통적인 예술양식과 사회적 기능을 전복시킬 수 있었다면, '빨리 감기'라는 대량소비기술은 어떤 전복적인 사회적 기능을 떠안고 있는지 말이다. MZ세대의 미디어 시청 의례는 플로라 버디와 기아나 에커트가 새로이 제시한 '리퀴드 소비' 개념과 맞닿아 있다. 리퀴드 소비의 특징은 '단명'(주기가 짧음), '액세스 베이스'(대여나 공유), '탈물질적'(같은 정도의 기능을 얻을 때 물질을 덜 사용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