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폭식 사회 : 기술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가? - 2022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2023년도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선정 우수과학도서
이광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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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든 정보든 과유불급. 많이 먹으면 체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외부 정보도 지나치게 폭주하면 오히려 정체가 일어나 정보처리의 효율성과 합리적 판단의 여지를 대폭 저하시킨다. 좋은 약도 용량이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알짜 정보도 지나치면 독성을 띠고 해악을 끼친다. 요즘은 말그대로 정보의 홍수 시대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 자동화 알고리즘에 기반한 정보의 물결은 알짜 정보와 가짜뉴스, 기만적인 광고와 노골적인 홍보쇼 같은 쓰레기 정보를 한데 뒤섞는 재주가 뛰어나다. 

비판적 문화연구가 이광석은 『디지털 폭식 사회』(인물과사상사, 2022)에서 "우리 삶을 파고드는 기술 만능주의와 그 기술 효과가 미치는 독성과 폭력성을 경계하기" 위해 '디지털 폭식 사회'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하고, 현재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충격과 이른바 '피지털 플랫폼' 질서가 디지털 폭식 현상을 가속화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피지털'이란 '피지컬(물질)'과 '디지털(비물질)'이 합성된 신조어다. 참고로, 이 책은 2020년에 출간된 『디지털의 배신』의 자매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플랫폼 기업들이 별점, 좋아요, 댓글 등으로 사람과 사물에 대한 호불호를 평가하는 '평점 사회'를 주도하는 새로운 통제 권력으로 부상했다고 진단한다. 

"날이 갈수록 디지털 플랫폼은 우리 현실 속에 디지털 '독성'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가령, 영세 상점과 식당에 오른 배달 앱 리뷰로 인해 가계 매출이 휘청거리는 일이 흔해졌다. 조회수의 인증 사진 등 주목 효과만으로 쉽게 호객이 이루어지고, 때로는 이로 인해 어떤 지역에는 젠트리피케이션 효과까지 유발한다. 

별점과 댓글은 현실 플랫폼 노동의 질까지 바꾸고 있다. 플랫폼 앱은 이미 전통적인 고용 계약 관계를 해체하고, 많은 사람을 위태로운 프리랜서 노동자의 지위로 내몰고 있다. 배달·택배노동, 가사와 돌봄 노동 등 단기 서비스 노동자들의 생존은 주로 고객들이 내건 별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여기서 고객 별점과 평점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쥐락펴락하는 인사고과 지표처럼 기능한다."(7, 8쪽) 

플랫폼은 일종의 현대판 '사회적 공장'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플랫폼의 문제는 영향력이 이미 노동 시장을 넘어서 사회와 정치에까지 미치는 데 있다. 

"지도 위 별점이 영세업자의 생존을 좌우하고, 공유 택시의 배차 알고리즘이 기사의 노동 방식을 길들이고, 플랫폼 알고리즘이 사회의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혐오와 적대의 정치문화를 배양하고, 소비자 손끝의 평점과 댓글이 플랫폼 노동 수행성의 척도로 쓰이면서 '산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플랫폼의 별점이 비수로 꽂히기도 한다". (9, 10쪽)

기술의 도구적 합리화를 넘어선 기술 만능주의 신화는 압축 고도 성장의 대표주자인 한국 사회를 짙은 안개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기술민주주의와 동떨어진 디지털 첨단 기술에 대한 강박적인 신뢰가 그만큼 두껍다. 빅테크의 첨단기술에 대한 무한신뢰는 때때로 '카카오 먹통 사태'와 같은 매우 후진적 사건으로 인해 잠시 금이 가기도 하지만, 이내 곧 봉합되고 잊혀지고 만다. 저자는 카카오 먹통 사태가 카카오의 시장 확장 욕망과 정부의 데이터 시장 부양론이 함께 만든 비극적 사건이라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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