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大기자, 연암
강석훈 지음 / 니케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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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를 통틀어 '대문호'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이는 연암 박지원이 유일하다. 유명하고 글재주가 좀 있다고 해서 '대문호'라는 타이틀이 붙는 게 아니다.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도, 수많은 저술을 남긴 천재 다산 정약용도 대문호라는 타이틀엔 못 미친다. '대문호' 소리를 들으려면, 적어도 세월의 때를 전혀 타지 않는 타고난 입담을 자랑하는 이야기꾼이어야 하고,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는 통찰력과 비판적 사회상을 제시할 수 있는 창의적 상상력이 활발발 넘치는 '영혼의 의사'여야 하기 때문이다. 방송 기자 출신의 저자 강석훈은 중국 특파원 시절 『열하일기』를 완독하고서 연암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하는 '진정한 대기자'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전문 기자의 예리한 시각으로 현대 기자들의 본보기가 될 만한 18세기 문인 연암의 저널리스트적 면모와 식견을 분석하고 있다. 

연암의 '대기자'적 기질을 가장 잘 드러낸 글은 당연히 『열하일기』다. 정사 박명원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진하사절단에 참여해 심양과 북경, 열하를 다녀와서 쓴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기나 기행문학이 아니라 연암의 기자적 면모와 식견, 실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조선 최고의 르포르타주다. 

"르포르타주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특정 주제나 지역사회를 심층 취재한 기자가 취재 내용과 식견을 바탕으로 뉴스와 여러 에피소드, 논평 등을 종합적으로 완성한 기사이다."(6쪽)

『열하일기』에 수록된 청나라의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풍속, 음악, 학문 등에 대한 방대한 기록과 다양한 에피소드, 높은 식견과 깊은 학식을 바탕으로 한 심층 필담은 기자 연암의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취재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연암의 기자로서의 정체성, 기자정신과 열정, 취재능력과 통찰력은 물론, 연암의 글을 통해 오늘날 언론계가 본받을 만한 의미와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연암은 1780년 8월 1일 북경에 도착한 날의 기사에서 '기지자수, 조선박지원야'라 말하며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또한 자신을 주자학의 교조주의에 물들지 않은 '삼류 선비'로 규정하면서, '해야 할 말을 하고 써야 할 글을 쓰는' 자세와 정신을 천명하는데, 이는 오늘날 언론계가 추구하는 '기자 정신'과 일치한다. 이외에도, 현장의 냄새를 맡는 기자적 본능, 좌충우돌하며 발로 뛰는 기자로서의 열정, ‘취재 보도에는 피아가 없다’라는 중립적인 관찰자 자세, 그림자와 메아리를 수집하는 심층적인 취재 기법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저자는 연암이 설정한 『열하일기』의 핵심 테마를 '나라와 백성을 위해 천하대세를 보고 천하지우를 걱정한다'로 해석했다. 

"연암은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 제도와 정치 지형, 고도로 심리적인 주변국 외교 전략을 정확하게 파악해 세상의 흐름을 바로 읽고, 성리학의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시대의 조류에 무지몽매한 조선의 현실을 깨우치고 앞날을 고뇌해야 한다는 연암의 호소나 다름없다."(7쪽)

연암의 비판적 르포르타주는 '청나라 장관론'을 빌어 조선 붕당 정치의 부조리와 사회 계급적 모순을 대놓고 까발린다. 조선 양반 세력의 이중성과 무지몽매는 물론, 사신단의 관행적 부조리, 청나라 관리의 부패에 이르기까지 꺼리거나 눈치 보는 성역이 없었다. 스스로를 이용후생과 실사구시에 힘쓰는 '하사', 즉 삼류 선비로 설정한 연암은 상사(일류 선비)나 중사(이류 선비)급의 대다수 조선 선비들이 주자 성리학과 존명배청, 북벌론, '되놈 혐오'란 케케묵은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음을 풍자하고 조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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