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복음서 가운데 나는 요한복음을 가장 좋아한다. 아무래도 영성과 말씀의 신비를 강조하는 복음서이기에, 그리고 예수의 초역사적 지평을 강조하고 있기에 내 맘에 와닿지 않았나 싶다. 공자나 붓다와 달리, 나는 예수의 역사적 현실성을 그리 중시하지 않았다. 가령 요한복음에는 동정녀 마리아 탄생설화와 유년설화가 누락되어 있다. 솔직히 '예수는 신화다'라는 말에도 그 어떤 위화감도 들지 않는다. 그런데 신학자 피터 워커의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서》(도서출판씨유피, 2022)를 읽고 나니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의미와 가치에 새삼스레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잘 알다시피,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함께 여행한 동역자로도 유명하다. 저자 피터 워커는 누가복음을 통해 예수의 삶과 사역을 시간적 흐름에 따라 되짚는다. 예수의 삶과 연관된 특정한 장소나 지역에 초점을 맞추는데, 베들레헴, 나사렛, 요단강, 유대 광야, 갈릴리, 사마리아, 가아사랴 빌립보, 여리고, 베다니, 감람산, 성전, 예루살렘, 골고다, 엠마오 등 예수가 남긴 발자취를 차근차근 살피고 있다. 독자들은 저자의 해박한 성경 지식과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기댄 꼼꼼한 역사적, 지리적 검토 덕분에 그 어떤 성지순례자들보다도 깊이 있게 예수의 사역과 관련된 성경 유적지를 톺아볼 수 있게 된다.
누가복음은 역사적 예수를 강조하고, 예수의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다. 특히 여성과 이방인에 대한 신앙 공동체의 개방과 포용력을 강조하고, 예수가 선포하신 메시지의 핵심이 '구원'과 '죄 사함'에 있음을 강조한다. 갈릴리부터 예루살렘에 이르는 누가의 '여행 서사'를 참을성 있게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역사적인 예수가 신화적인 예수로 탈변하는 거룩한 영적 과정에 동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