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us Gabriel VS -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차이와 분열을 극복하는 철학,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쓰키타니 마키.노경아 옮김 / 사유와공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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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론'하면 내겐 바로 떠오르는 세 가지가 있다. 소박한 실재론, 사변적 실재론 그리고 신실재론이다. 소박한 실재론이란 주체와 무관한 외적인 실재가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분주한 일상에 이리저리 치이는 평범한 현대인이라면 평생 소박한 실재론자로 살다 갈 것이다. 반면에 나머지 두 실재론은 약간의 먹물이 요구된다. 사변적 실재론은 미국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의 이름이 대표적으로 따라 붙고, 신실재론은 독일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이름이 따라 붙는다. 

얼핏 소박한 실재론을 넘어서면 누구나 '신실재론'이란 이름을 갖다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는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른 얘기다. 사변적 실재론과 신실재론의 관계는 다소 애매하지만, 확실한 것은 둘 다 구성주의나 자연주의라는 동일한 적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포스트모던 이후의 새로운 실재론이라는 점에서도 비슷한 맥락에 위치하고 있다. 넓게 보면 사변적 실재론과 신실재론 모두 '새로운 실재론'에 포함된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신실재론은 '인간'과 '세계' 두 항목에 대해 '신실존주의'와 '의미장'을 내세운다. 신실존주의에선 인간은 타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근원적으로 사회적인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가령 《새 시대를 살아가는 도덕철학》에서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함께 집을 짓는 꿀벌 같은 존재"라고 했다. 타자가 없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리고 타자성을 '차이의 총칭'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타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두 가지 처방전으로 존엄과 관용을 강조한다. 존엄에는 타자의 인간성을 인정한다는 태도가 포함되어 있다. 신실존주의에 근거해,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윤리자본주의, 부모자격증, 이상적 포럼, 차이에 얽매이지 않는 정치 등 다소 급진적인 제안을 한다.

한편, '세계'에 대해선 '세계는 실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얼핏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같다. 어떤 사물에 대해 그 사물 자체의 존재뿐만이 아닌 그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 사고 역시 동시에 존재하므로, 그것들이 나란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상이기에, 신실재론에서 세계는 일종의 거대한 메타 인지장으로 해석된다. 

이 책에서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정체성, 가족, 사랑, 종교, 윤리 등 본질적인 측면에서 '타자'와 '차이의 양극화' 문제를 설명한다. 전통 독일철학은 타자성을 정체성과 같은 의미, 즉 '동일성의 반복'으로 이해해왔지만, 타자성은 정체성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정체성은 인간의 출발점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구글과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는 정체성을 강요한다. "미디어는 고정된 정체성을 메뉴판처럼 제공하고 그것을 확산시킨다." 때문에 현대인은 타자와 자기의 관계를 매우 왜곡된 형태로 인식한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소셜 미디어는 의존증을 유발하는 마약과도 같다." 소셜 미디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인간의 비인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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