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의 공식 - 욕하면서 끌리는 마성의 악당 만들기 어차피 작품은 캐릭터다 1
사샤 블랙 지음, 정지현 옮김 / 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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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의 무협소설『소오강호』에서 내게 커다란 충격을 준 빌런은 군자검 악불군이다. 소설을 읽다가 정말 내 입에서 '악' 소리 나오게 할 만큼 '군자검'의 실체는 실로 충격이었다. 화산파 장문인이자 영호충의 스승인 악불군은 오악검파의 수장인 야망의 화신 좌냉선보다도 더욱 악독한 위군자다. 마교나 사파의 빌런보다도 정파의 빌런이 더욱 사악해 보인다. 왜일까. '명문정파'라는 문패나 후광이 주는 선입견을 철저히 깨는 이중적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욱 밉삽스럽게 보이는 것 아닐까 싶다. 비리를 저지른 경찰이나 공무원이 깡패나 조폭보다 더욱 대중적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는 이유도 마찬가지 연유일 것이다. 같은 악당 역할이라도, 정파 고수 악불군과 좌냉선이 마교 교주 임아행이나 규화보전을 익힌 동방불패보다 더욱 빌런스럽다. 마교의 리더급 인물들은 그나마 영웅적 기개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빌런 악불군은 '캐릭터 아크'가 확고한 인물이다. 캐릭터 아크란 '인물호'로 번역되곤 하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캐릭터가 겪는 변화나 내적 여정을 말한다. 악불군은 정파급 인물에서 사파급 인물로 넘어가는 뚜렷한 캐릭터 곡선을 보여준다. 마치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해리 포터』의 볼드모트(톰 리들)처럼 말이다. 악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빌런들의 캐릭터 아크는 이야기에 속도와 갈등, 훌륭하게 뒤엉킨 플롯을 제공하고, 빌런들의 깊이감을 더해준다. 무림비급 '벽사검보'를 얻기 위해 아내와 딸까지 속이고 믿고 따르는 제자들까지 철저히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사이코패스가 군자검 악불군이다. 『소오강호』의 첫 장면이 바로 악불군의 치밀한 계략에 의한 포국이자 연출이라는 점을 독자들은 매우 뒤늦게야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은 선택에 달려 있다. 경험과 영혼의 상처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좌우한다. 빌런과 히어로의 차이는 그들이 내리는 결정에 있다."(84쪽)

"모든 성공한 히어로 뒤에는 빌런이 있다." 소설가 사샤 블랙은 빌런이 주인공을 고뇌하게 하고, 갈등과 위기에 빠뜨린 뒤 각성하게 만드는 존재라서, 빌런이 힘이 없으면 이야기 자체가 밋밋하고 종국에는 주인공까지도 매력이 없어진다고 강조한다. 아닌게 아니라, 화산파 대사형인 영호충의 내적 갈등도 주로 고아 출신의 자기를 키워준 아버지 같은 악불군과 사매 악영산과의 관계 때문에 발생한다. 

이 책 『빌런의 공식』(윌북, 2022)은 빌런의 아홉 가지 유형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전능한 빌런(『해리 포터』의 볼드모트), 라이벌(『해리 포터』의 드레이코 말코이), 정신 나간 미치광이(「다크 나이트」의 조커), 복수의 화신(「다크 나이트」의 투페이스), 두 얼굴의 빌런(「스타워즈: 시스의 복수」의 은하계 의장 팰퍼틴), 내면의 빌런(『지킬박사와 하이드』의 하이드), 유혹적인 빌런(「베트맨」의 포이즌 아이비), 질투의 화신(「라이온 킹」의 스카), 여성 빌런(「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 프리스틀리) 등이 그러하다. 그러고보니, 마교 교주 임아행은 '전능한 빌런'에 속하고, 악불군은 대표적인 '두 얼굴의 빌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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