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씹을수록 맛이 난다. 미국 작가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는 그런 맛깔나는 고전 동화다. 어린 독자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출발, 입문, 귀환의 영웅 서사적 구도다. 도로시 일행의 여정은 자기이해를 향한 모험이기도 하고,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 발달 요소와도 얼마간 맞물려 있다. 도로시가 차례대로 만나는 캐릭터인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는 보통 지식, 사랑, 힘과 용기를 대변하는데, 이는 개인 양심의 구성 요소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등장인물이 품고 있는 풍부한 상징성이다. 가령 정치경제학적 상징을 덧씌우면, 도로시는 평범한 미국 시민을 상징하고, 허수아비는 농부, 양철 나무꾼은 공장 노동자, 겁쟁이 사자는 정치인, 동쪽 마녀는 은행가와 자본가를 상징한다. 자기계발적 차원에서 사랑과 지혜, 용기 등 양심 덕목을 일깨우고 있어 이야기 본래의 인성 교육적 가치가 높다. 그냥 인의예지신 같은 덕목만 강조했다면 시골 훈장의 구닥다리 훈계와 다를 바 없겠지만,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와 같은 인상적인 우화적 캐릭터를 등장시켜 색다른 재미와 심리 역동성을 제공한다. 허수아비는 똑똑한 두뇌를, 양철 나무꾼은 따뜻한 심장을, 겁쟁이 사자는 용기를 가지려고 하지만, 이들 모두 원하는 것을 이미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다. 자기무지 혹은 자기신뢰의 결여 측면에선 도로시도 이들과 다를 바 없다.
세 번째는 보드 게임과 같은 오락 측면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마법사와 마녀가 나오는 환상 이야기인 점도 어린 독자들의 흥미와 시선을 잡아 끌지만,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는 노란색 벽돌길은 모험 미션이 주어지는 보드 게임판과 다를 바 없다. 독자와 도로시 일행은 게임 플레이어가 되어, 닥친 위기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기 안에 잠재된 능력과 재능을 깨닫게 된다. 도로시 일행을 방해하는 훼방꾼 세력으로 사악한 마녀, 곰의 몸뚱이에 호랑이 머리를 한 괴물, 날개 달린 원숭이들이 등장한다. 역사적 맥락에서 본다면,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는 노란 벽돌길은 당시 금본위제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동안 다양한 판본을 접했다. 매번 느끼는 바지만, 고전 동화는 번역보다도 그림체가 개성과 스타일을 결정짓는다. 이번엔 오스트리아의 일러스트레이터 리즈베트 츠베르거의 그림이었는데, 솔직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특히 허수아비와 도로시의 모습은 너무 엇나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형적 이미지를 벗어났다. 지식과 농부를 상징하는 허수아비가 너무 병적으로 부풀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