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시계탑
니시노 아키히로 지음, 노경실 옮김 / 소미아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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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양탄자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양탄자가 날 수 있게 된 이유로 사람들은 신기한 '마법'을 떠올리곤 하는데, 나는 양탄자를 만든 이의 극진한 사랑과 아낌없는 보살핌 덕분이 아닐까 싶다. 말 못하는 사물이라도 정을 주고 아끼고 돌봐주면 그 마음에 반응하는 신비한 영물이 되는 법이다. 일본의 그림책 작가 니시노 아키히로가 소개한 반딧불로 가득한 숲속에 있는 '약속의 시계탑'도 바로 그런 경우지 싶다.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과 보살핌 덕분에 영물이 되어버린 신비한 시계탑 이야기다. 아, 고장난 시계를 터부시하는 이들에겐 약속의 시계탑이 '요물'처럼 비춰질 수도 있겠다. 

틱톡과 니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마치 시계의 큰 바늘과 작은 바늘이 서로 만나는 12시처럼 친밀했다. 틱톡은 시계탑 안에 사는데, 평소에 시계의 톱니바퀴를 성실하게 관리한다. 시계에 대해 모든 걸 아는 시계박사이고 특기는 시계 수리다. 니나는 고아원에서 애완용 장수풍뎅이를 돌보고 있는 마을의 인기녀다. 날마다 그들은 시계탑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계탑 창을 통해 은빛 별똥별과 밤하늘을 나는 배달부와 산타클로스도 보았다. 

그런데 니나의 팔에는 저주에 걸린 '드럼 섬'에서만 자라는 불꽃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니나의 엄마도 불꽃나무에 걸려 결국 한 그루 나무로 변해버리고 말았는데 말이다. 니나도 마을 사람들도 불꽃나무가 유전이 아니라 일종의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틱톡과 나나는 시계탑에서 자정을 알리는 12시 종소리를 함께 듣기로 굳게 약속한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어느날, 불의 비를 퍼붓는 무서운 구름인 불새가 마을에 나타나자 순식간에 마을이 불길에 휩싸였다. 마을 사람들은 지하 대피소로 대피하고, 니나의 고아원 친구들이 시계탑으로 달려왔는데 니나가 사라졌다고 한다. 틱톡과 사람들은 사흘 내내 니나를 찾았지만 아무 종적도 찾을 수 없었다. 틱톡은 니나가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기적처럼 시계탑이 멈추어 버렸다. 틱톡과 니나가 만나기로 약속한 그 때 그 시각 직전에. 그후로부터 시계탑은 12시가 되기를 거부한 것처럼 11시 59분에 그대로 멈추어 있다. 자정의 종소리를 울리지 않음으로써 니나와 함께 듣기로 약속한 틱톡의 소망을 지켜준 것이다. 

시계탑은 고장나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있는 감정을 지닌 활물과 같았다. 흔히들 고대인들의 마술적 사고의 핵심으로 모든 사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과 신령한 사물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페티시즘을 든다. 여기선 커다란 약속의 시계탑이 바로 동네의 당산나무와 같은 그런 신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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