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은 인간에겐 일종의 비밀병기와 같은 든든한 존재다. 식용유나 참기름, 들기름처럼 먹을 수 있는 기름은 음식의 풍미를 높인다. 불맛도 음식의 맛을 크게 좌우하지만, 기름과 음식이 일으키는 다양한 화학 반응과 궁합은 평범한 음식을 정말 깜짝놀랄 별미로 만든다. 튀기지 않으면 맛볼 수 없었던 미각과 후각의 대향연을 펼쳐보이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식재료가 고온의 기름과 만나 노릇하게 갈색으로 변하는 것은 마이야르 반응 덕분이다. 우리가 튀김요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가령 건빵과 꽃빵, 오뎅, 감자를 한번 기름에 튀겨 먹어보라. 한 번 맛보면 헤어나기 어려운 별미가 된다. 한동안 빌려온 만화책을 보면서 튀김 요리를 먹는 재미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바로 이런 게 행복이지' 싶은 감상에 젖게 만든 소소한 도락이었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 물은 전기적 성질을 띤 극성물질이고, 기름은 전기적 성질이 없는 비극성 물질이다. 그래서 물은 물과 잘 섞이고, 기름은 기름끼리 잘 뭉친다. 그런데 물과 기름을 서로 섞이게 만들 수 있다. 그걸 바로 유화라고 한다. 유화는 요리과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다. 물과 기름을 잘 섞이게 하려면 계면활성제를 쓰면 된다. 요리 드레싱에 자주 활용되는 겨자가 바로 그런 물과 기름을 서로 섞일 수 있게 돕는 계면활성제다.
이 책 『기름은 미끈미끈』(아름다운사람들, 2022)은 기름에 대한 기본적인 과학적 호기심을 토대로 밀도, 유화, 마이야르 반응, 어는 점 등에 대해 알려준다. 솔직히 먹는 기름만이 아니라 마블링 작품 같은 미술이나 자전거 정비에 사용되는 기름들도 함께 소개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