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병 혹은 거인증은 성장호르몬이 너무 많이 분비되어 비정상적으로 신장이 커지는 질병이다. 과다 성장은 그 자체로 병적 증후다. 사람 신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체도 마찬가지다. 특히 자본주의 신화가 부추기는 무한성장의 신화는 그 자체로 병적이다. 요즘 '저성장'을 침체나 쇠퇴로 여기고 걱정과 우려를 늘어놓는 이들이 많지만, 따지고 보면 성장할 만큼 성장했다면 성장을 멈추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오히려 '무한 상승, 확대, 성장'이라는 강박관념으로 무장한 무한 고성장의 추구가 거인병과 다를 바 없는 이상상태다. 저성장 시대를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지극히 정상이니 말이다.
일본 최고의 전략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는 지금이 성장이 정점에 달해 성장을 멈춘 고원사회(高原社會)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경제성장의 측면에서 올라갈 만큼 다 올라온 상태라는 얘기다. 따라서 단순히 경제성장률의 측면에서 저성장, 침체, 쇠퇴 운운하는 것은 맥을 완전 잘못 짚은 셈이다. 저자는 고원 사회의 해결과제가 경제에 휴머니티를 회복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고원사회에 연착륙하기 위해, ‘문명이 제공했던 편리한 세계’를 ‘살아갈 가치가 있는 세계’로, ‘경제성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인간성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고원사회에 연착륙하기 위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다음 세 가지다. 거대한 북유럽형 사회민주주의 사회, 혁신에 의한 사회 과제의 해결, 기업활동에 의한 문화적 가치 창조. 반면에 피해야 할 방향은 작은 미국형 시장합리주의 사회, 혁신에 의한 경제 성장 추구, 기업 활동에 의한 대량 소비 촉진이다.
인간성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사회는 자기충족적 경제활동의 사회다. 경제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가 편리함, 기능, 효율을 강조했다면, 인간성에 기인한 충동을 바탕으로 한 사회는 풍요로움, 정서, 낭만을 더욱 가치 있는 요소로 간주한다. 특히 노동과 소비 측면에서 말이다.
"인간성과 경제, 휴머니티와 이코노미가 일체화된 사회에서는 편리함보다 풍요로움이, 기능보다는 정서가, 효율보다는 낭만이 더욱 가치 있는 요소로 요구된다(169쪽)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 복지, 세금 제도 등 사회 기반을 개선해야 하는데, 저자는 휴머니티와 자기충족적 사고가 발현되는 프레임으로 '예술로써의 비즈니스 추구, 투표적인 소비 실천,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 세 가지를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