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죽음들 - 최초의 여성 법의학자가 과학수사에 남긴 흔적을 따라서
브루스 골드파브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슴을 뛰게 만드는 책이 있다. 브루스 골드파브의 『아주 작은 죽음들』(알에이치코리아, 2022)은 과학, 의학, 법의학, 과학수사에 헌신하려는 여성 꿈나무들의 가슴을 꽤나 설레게 할 것이다. 이 책은 미국 최초의 여성 법의학자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1878~1962)의 삶과 업적을 다루고 있다. 프랜시스의 삶을 들여다보면, '여성은 두 번 태어난다'는 말이 정말 실감나게 다가온다. 아직 '이모작'이란 용어가 등장하지도 않던 시절, 50대의 나이를 획으로 삼아 전반생과 후반생이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가 '최초의 여성 법의학자가 과학수사에 남긴 흔적을 따라서'이지만, 과학수사에 보인 그 흔적은 50대 중년 이후부터다. 가부장제가 뿌리 깊고 마초가 보스로 행세하는 학술계와 의료계에서 부유한 엘리트 가문 출신의 당찬 여성이 보일 수 있는 성취의 스케일을 잘 보여준 전기문학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40대까지, 프랜시스는 부모의 후원하에 음악과 미술에 대한 고급 취향을 키울 수 있었고,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를 배웠으며, 집에 둘 고급 가구, 미술품, 장식품 수집을 즐기는 등 부유한 엘리트 가문 여성이 걸을 법한 그런 삶을 살았다. 가정적이면서 예술적인 삶 말이다. 직업을 갖지 않아도, 생계비를 벌지 않아도 여가와 부를 즐기며 안락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따라서 굳이 전문교육을 더 받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프랜시스는 어릴 때부터 의학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굳이 의대를 간다면 꼭 하버드 의대에 다니고 싶었다. 하버드를 제외하면 다른 선택지가 없진 않았지만, 프랜시스는 받을 가치가 있는 의학 학위는 하버드 의대 뿐이라고 굳게 믿었다. 문제는 당시 하버드 의대는 여학생을 전혀 받지 않았다. 

프랜시스는 스무 번째 생일이 되기 한 달 전에 자기보다 열 살 많은 변호사 블레잇 리와 결혼한다. 부부는 세 명의 자녀를 두지만 오랜 별거로 결혼생활은 막을 내리게 된다. 51세가 된 프랜시스는 병(아마도 유방암)에 걸리고, 개인 치료 시설인 필립스 하우스에서 요양하게 된다. 이때 우연히 오빠 조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검시관이었던 조지 버지스 매그래스도 두 손의 심한 염증으로 입원해 있었다. 매그래스는 병리학 수련을 받은 미국 최초의 검시관으로, 질병의 원인과 결과에 관한 전문가였다. 매그래스는 프랜시스에게 자신이 담당한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특히 법을 개혁해 부패한 코로너 제도를 검시관 제도로 바꾸고, 대학에 법의학과를 개설해 전문가를 배출해야 한다는 매그래스의 생각은 프랜시스 후반생의 나침반이 되었다. 

"나는 새롭고 현대적인 최초의 실험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창립자인 나의 책과 노트, 교육용으로 사용될 랜턴 슬라이드 파일 전체, 영상 필름이 갖추어진 도서관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의사, 법률가, 치과의사, 보험업 종사자, 코로너, 검시관, 장의사, 경찰에게 법의 의학적 측면을 강연해줄 유능한 강사진도 필요합니다."(166쪽)

이렇게 미국 최초의 법의병리학자 매그래스는 프랜시스의 후반생을 구축하는 멘토가 된다. 그리고 프랜시스는 매그래스의 열정적인 구상을 현실화한다. 

법의학의 제도화는 법학, 의학, 경찰 세 분야의 개혁을 수반한다. 프랜시스는 하버드 의대에 법의학과를 개설하고 매그래스 도서관을 만드는 등 하버드대에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프랜시스의 예술적 재능이 녹아든 업적이라면 살인사건 현장을 미니어처로 만든 '디오라마'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디오라마는 주로 경찰 살인사건 세미나에 활용되었다. '의문사에 관한 손바닥 연구'라 불리는 디오라마는 현재까지 18개가 남아있는데, 책은 그중 6개의 디오라마 사진을 싣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