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시간과 노력의 침전물이다. 마치 체조선수의 손바닥 굳은살처럼 말이다. 기존의 굳은 살이 떨어져 나가고 새 살이 생기고 또다른 굳은 살이 베기는 수차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취향이 조변석개처럼 변한다? 그건 취향이 아닐 것이다. 취향은 현실에 뿌리를 단단히 내린 희망과 선호, 그리고 아낌없는 노력의 방정식에 좌우된다. 그래서 무술 고단자의 기세처럼, 고급스런 취향은 그 자체로 기쁨과 고통의 차원을 넘어선 부동의 평정심과 같은 경지를 보인다. 흔히 말하는 '다도' 같은 말이 바로 이런 경지를 일컫는 경우다. 혹여 지인의 취향이 매우 내추럴하게 보인다면, 그 내추럴 배후에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녹아들어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마치 백조의 우아함을 유지하려면 눈물겨운 물밑 발질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한때 와인 애호가였다. 비록 대형마트나 백화점의 중저가 와인들만 섭렵했지만, 그래도 와인 관련 영화나 『신의 물방울』 같은 와인 만화책을 보면서 소믈리에 지식을 쌓곤 했다. 내추럴 와인 전문가 정구현에 따르면, 와인은 크게 컨벤셔널 와인과 내추럴 와인으로 나뉜다. 컨벤셔널 와인은 우리가 시중에서 흔히 맛볼 수 그런 대량 생산 와인을 말한다. 반면에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이나 비오디나미로 얻은 포도를 포도 껍질에 자생하는 자연 효모만으로 발효하고 그 무엇도 넣지도 빼지도 않고 만든 와인"이다. 그말인즉, 나는 단 한번도 내추럴 와인을 맛본 적 없다는 얘기다. '내추럴 와인'이란 용어가 있는 것조차 몰랐으니 더 말해 뭐하겠는가.
내추럴 와인의 '내추럴'은 ‘유기농’이나 '비오디나미(바이오다이내믹)', '친환경' 혹은 ‘무첨가물'의 차원을 한단계 넘어선다. 각 지역의 테루아를 살리는 끝판왕이라 할 수 있겠다. 소규모 생산이라 가격 또한 많이 비싸다.
저자는 내추럴 와인의 스타일을 크게 '클래식하다'와 '펑키하다' 두 유형으로 나눈다. 클래식한 내추럴 와인이 대체로 주시(과일 향이 나고 상큼)하고 정교하며 거슬리는 결점 요소가 없다면, 펑키한 내추럴 와인은 '파격적이고 멋지다'는 펑키의 뜻 그대로, 결점을 매력으로 승화한 경우다. 가령 펑키한 내추럴 와인은 "브렛, 마우스, 볼라틸 같은 요소들이나 가볍고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스타일, 의도적으로 살짝 피지하게(거품이 나게) 발효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탄닌을 살짝 남기거나 하는 식으로 기존의 와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게다가 펑키한 내추럴 와인은 한국의 전통요리처럼 발효 음식이나 간장, 된장 등의 장류가 들어간 음식과 궁합이 아주 좋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