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세상에 대한 친절한 시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향한 예의바른 소소한 배려, 그게 바로 '참 괜찮은 태도'다. 인간은 짐승과 성인 두 극단에서 줄타기하는 광대 노릇과 흡사하다고 본 철학자도 있었는데, 인간은 금수가 되어서도 안 되고 굳이 성인이 될 필요도 없다. 그저 인간다우면 족하다. 신문에 대서특필될 만큼 남을 위해 적극 헌신하거나 해마다 열혈 봉사하는 기부천사나 보살 같은 분들도 계시지만 그런 높은 이상이 목표가 되어선 곤란하다. 오히려 날마다 마주치는 이들에게 사소한 친절과 밝은 미소를 베푸는 '봄날의 햇살' 같은 이들이 더욱 많아져야 살 맛 나는 세상이 된다. 가령 헌혈이 습관인 사람들을 떠올려보라. 바로 그런 게 '참 괜찮은 태도'다.
헌혈을 안한 지 15년이 넘었다. 그리고 혈액 재고가 거의 바닥이라는 뉴스를 접할 때가 있었다. 그때 부끄러웠다. 삶에 지칠수록 헌혈과 같은 작은 배려와 친절을 등한시하게 된 것이 아닐까 반성해본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최강 면역력을 누구나 갈구하는 요즘, 헌혈하면 오히려 피가 맑아지고 몸이 건강해진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그다지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헌혈 우대 대상이 학생과 군인처럼 건장한 청년층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머리가 희끗해진 나는 국가나 적십자사의 우선적인 대상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제 피를 금쪽처럼 아끼기 마련이다. 건강검진 때마다 뭔 피를 그리 많이 뽑냐며 투덜대는 어르신들이 헌혈을 할리 만무하다. 헌혈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나 에이즈 같은 감염 문제가 아닐까 싶다. 병이 옮을까 무서워서 헌혈을 꺼리는 분들이 아마도 가장 많을 것이다.
저자 박지현은 KBS 「다큐멘터리 3일」의 원년 멤버다. 「다큐멘터리 3일」(2007~2022)은 특정 공간에서 72시간 동안 벌어지는 상황과 사람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 기록한 방송 프로다. 저자는 2007녕부터 12년 동안 VJ로 활동하며, "교도소와 고물상, 노량진 고시원, 소록도, 조선소, 해병대, 시골 분교의 입학식, 알래스카의 한인타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실, 청와대, 인천 공항 관제탑, 올림픽 개·페막식 현장 등"을 취재할 수 있었다. 길 위에서 만난 정말 다양한 분들의 삶을 밀착 취재하면서, 덕분에 삶의 중심을 다잡는 실용적인 지혜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굳건한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2008년 저자는 서울에서 가장 많이 헌혈을 한다는 '구로 헌혈의 집'을 취재한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다정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소소한 각성을 하게 된다. 헌혈은 뭔가 거창하면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그런 게 아니다. 소소한 친절과 감사하는 마음이 자신과 주변 세계를 보다 밝게 만든다.
"힘들게 노력해서 목표를 이루었지만 그 후의 공허함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큰 목표를 세우고 살아가는 것만큼 소소한 취향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공을 이루는 것만큼 그 기쁨을 같이 누릴 주변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인가를 해내고 이뤄 갈 때 같이 기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곤 합니다."(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