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학의 범주 가운데 '날 것'과 '익힌 것'이 있다. 내가 앤 패디먼의 《리아의 나라》(반비, 2022)를 읽으면서 줄곧 뇌리에 떠오른 문화인류학적 개념이 바로 '날 것'과 '익힌 것'의 구조적 대립이다. 리아 리는 19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 온 라오스 몽족 출신의 난민 아이다. 안타깝게도 리아는 생후 3개월에 심한 경직을 동반한 발작을 일으키는데, 미국 캘리포니아 병원 의사들은 가장 흔한 신경질환 중 하나인 '뇌전증' 진단을 내리지만, 몽족 출신의 부모인 나오 카오 리와 푸아 양은 오히려 딸이 샤먼이 될 수 있는 심신 조건인 '영혼에게 붙들려 쓰러진 병', 즉 우리식으로 치면 일종의 '무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
리아를 둘러싼 의료분쟁의 배후에 뿌리깊은 문화적 장벽 혹은 신화적 장벽이 도사리고 있다. 병원에 몽족 언어를 구사하는 전문 통역자의 결여로, 의사와 환자 가족 사이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문제도 적지 않았지만, 서구식 병원의 치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몽족 부모와 환자 가족을 비협조적이라 여기고 몽족 신앙을 우매한 미신으로 간주하는 미국 의사들간의 보다 깊은 신화적 차원의 갈등이 존재했다.
여기서 라오스 몽족의 무속 치료 문화는 '날 것'으로, 미국의 현대의료 시스템은 '익힌 것'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날 것과 익힌 것'은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신화학》이란 역작에서 내세운 개념적 대립쌍인데, 구조주의 인류학은 한 문화의 심층 신화는 음양, 남녀, 야생과 문명, 날 것과 익힌 것 같은 일련의 개념적 대립쌍으로 구조화되어 있다고 본다.
오만과 편견에 휘둘리는 사랑은 지혜롭지 못한 사랑이다. 타자 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결여된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정말 세상에서 제일 아끼는 이를 고통의 수렁으로, 심지어는 죽음의 늪으로 몰아넣곤 한다. 생후 8개월부터 네 살 반이 될 때까지, 리아는 총 열입곱 번 입원했다. 4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처방은 스물세 번이나 바뀌었다. 의사들의 노력과 헌신 혹은 연민이 부족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 리아의 가족들이 처방된 약을 제대로 투약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의사들은 그렇다고 굳게 믿었다. 약을 제대로 먹이지 않는 리아네 부모가 아동학대 수준이라고 보고 위탁보호 조치에 앞장섰다. 한편 리아 가족들은 리아에게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을 보며 의사들과 약물을 불신했다. 위탁가정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리아는 세 번의 굿에도 불구하고 병세는 계속 악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