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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역사
제임스 수즈먼 지음, 박한선.김병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8월
평점 :
지구별의 문명 수레를 굴리는 두 바퀴가 있다. 바로 노동과 여가다. 주당 40시간의 노동과 잠깐의 휴식이 현대인이 일주일을 쓰는 주요 방식이다. 노동의 의미를 보다 깊이 알려면 여가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영국의 사회인류학자 제임스 수즈먼은 사회인류학적 관점에서 노동과 여가의 역사를 고찰한다. 가령 석기 시대 수렵채집인의 원초적인 노동과 여가, 농업혁명을 달성한 고대 농부의 노동과 여가, 그리고 네 차례의 산업혁명을 거친 현대인의 노동과 여가가 비교된다.
그동안 일과 밥벌이에 대해 가장 많이 토를 단 것은 경제학자들이었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일을 "인간의 필요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소모하는 시간과 노력"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런 정의는 두 가지 문제를 놓치고 있다. 하나는 일과 여가를 구분하는 유일한 차이가 '맥락'에 달려 있거나 보수를 주느냐 받느냐에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필요'의 범위와 모호성 문제인데, 식량, 물, 공기, 온기, 친교, 안전 같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소모하는 에너지를 제하면 보편적인 필요로 간주될 만한 다른 어떤 것이 거의 없다는 것과, 필요는 흔히 '욕구'와 서로 구별하기 힘들게 뒤섞인 애매어라는 점이다.
전통적 경제학의 '일=밥벌이'라는 협소한 정의 대신에, 저자는 사회인류학적 관점에서 일의 보편적 정의를 "어떤 목표와 결말을 달성하기 위한 과제에 에너지와 노력을 의도적으로 소모하는" 것으로 넓힌다. 사회인류학자는 일과 인간의 관계사에서 꽈배기처럼 서로 교차하는 두 가지 길을 고려한다. 하나는 "인간이 에너지와 갖는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의 진화와 문화가 가려는 방향"이다. 두 길의 교차점은 불의 활용, 농경의 보급, 도시의 탄생, 굴뚝 공장의 출현이다. 이 네 가지에 새로운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인공지능(AI)'이 될 것이다.
정말 세상이 확 달라졌다. 평균 수명은 길어졌지만, 인공지능과 자동화 같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고용 안정성은 대폭 떨어졌다. '평생직장'이란 말은 쏙 들어가고, 대신에 직업이 서너 가지가 넘는 'N잡러'와 본캐와는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내세우는 '부캐'라는 말이 성행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2020년 '일자리의 미래'라는 보고서에서 향후 25년간 8.5천만 개의 일자리가 자동화로 대체되고, 9.7천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했다. 이 소식이 장미빛이 아닌 게 문제다. 직업 수는 늘지만 대우는 박해지고 경쟁은 한없이 치열해져, 번아웃증후군, 공황장애, 성인 주의력결핍증 등 현대인들의 정신적 스트레스 목록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