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에 관심이 있는 지인들에게 강추하는 두 분이 있다. 한 분은 이규태 선생이고, 다른 한분은 소릉 이어령 선생이다. 두 분 모두 한국의 문화적 유전자와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넓고 깊은 문화인류학적 통찰을 보여주셨다. 두 분 모두 크게는 동서 문명 비교, 즉 알파벳 문화권 대 한자 문화권의 비교의 석학이셨고, 작게는 한중일 비교문화의 대가셨다. 이규태 선생의 대표선집은 이미 완간되어 있지만, 소릉 선생의 대표선집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내가 젊은 시절 읽으면서 무척 감탄한 소릉의 역작이 두 권 있었는데, 최근에 그 후속작 혹은 자매편과도 같은 책을 완독해서 기뻤다. 한국의 대표 명시를 소개한 《언어로 세운 집》이 《공간의 기호학》의 자매편이라면, 인공지능에 대한 인문학적 입담이 돋보이는 《너 어떻게 살래》는 《디지로그》의 명실상부한 후속작이다. 이십 여년 전, 소릉 선생은 《디지로그》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서로 결합된 디지로그 개념을 한국 문화의 미적 정체성으로 내세운 바 있다. 소릉에게 디지로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트와 아톰, 클릭과 브릭, 가상현실과 실제현실, 정보네트워크와 물류 등, 디지털과 비디지털의 이항대립체계를 갈마드는 통섭 개념이었다. 다시 말해서, 디지로그는 21세기 정보사회론 혹은 디지털 문명론의 핵심 키워드이자 한국 미학의 '창조적 유전자'이기도 하다.
《너 어떻게 살래》는 코흘리게 아이들에게 해주던 꼬부랑할머니의 구수한 옛날이야기 정서가 물씬나는 정보사회 담론이다. 한국의 대표적 지성 소릉이 꼬부랑할머니 특유의 감성으로 정보지식사회의 핵심 키워드인 인공지능 보따리를 풀어내고 있다. 최첨단 기술인 인공지능 담론에 "신화와 전설과 머슴방의 엣날이야기" 같은 '호모 나랑스'적인 것을 혼합한 셈이다. 컴퓨터의 비조(앨런 튜링)도, 디지털 컴퓨터의 시조(폰 노이만)도, 인공지능의 삼인방(마빈 민스키 등)도 푹 빠져들만한 그런 매력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인공지능'하면 으레 비엔나 소세지처럼 줄줄이 엮어나오는 관련 주제들이 있다. 이를테면 알파고, 알고리즘, 시리, 딥 블루, 인터페이스, 디지로그, 생명자본 등과 같은 관련어들이다. 이런 핵심 테마들이 본문에선 열두고개와 '꼬부랑길'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약간 겉도는 잡다한 지식은 토막상식과 다를 바 없는 '샛길'이란 코너로 등장한다.
"인간은 도구를 낳고 도구는 인간을 낳는다." 인공지능과 스마트폰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그런 호모 파베르 특유의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스마트폰은 우리 시대의 신통한 도깨비 방망이요, "호주머니 속의 나의 뇌"다. 구글 안드로이드 얘기도 빠질 수 없다. 안드로이드 로고는 스타워즈의 알투디투를 닮은 초록색 로봇 모양인데, 뒤집으면 영락없이 콘센트에 꽂는 플러그 생김새다. 러시아 출신의 여성 디자이너 이리나 블록의 작품으로, 정보사회란 항시적인 접속의 사회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상징적 아이콘이 아닐 수 없다.